ㅡ의견을 구합니다.
ㅡ 試論. ㅡ정약용과 '자산(玆山)어보!'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지은 <玆山魚譜>의 '玆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현산어보>로 불러야 옳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임형택,박석무,정민 등 학계의 지지를 얻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종전대로 <자산어보>로 불러야 합당하다고 여긴다. <현산(玆山)어보> 주장자와 지지자의 의견은 그렇다. '玆山'의 '玆'에 '검을 현'이라는 독음(讀音)이 따로 있다는 것. 黑山의 '黑'이 너무 어둡고 무서워서, 같은 뜻의 '현(玆)'으로 대신하였다는 것. 정약전과 정약용도 그렇게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중에 흑산도에 생긴 '玄州 서실'의 '현(玄)'과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정약용의 제자 이강회의 저서에 현주 서실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선뜻 수긍할 수 없다, 우선 정약전과 정약용은 "玆者黑也"라고만 말했었을 뿐이다. 玆의 뜻이 黑이라는 것이고, 달리 讀音을 설명한 것이 아니다. 정약전이 밝힌 <자산어보> 序文의 해당 부분이다. "玆山者黑山也 余謫黑山 黑山之名 幽晦可怖 家人書牘 取稱 玆山玆亦黑也" 앞에 나온 家人에 해당할,동생 정약용도 자신의 詩에 부기하여 놓았다. "黑山之名。幽黑可怖。余不忍呼之。 每書札改之爲玆山。玆者黑也" 어쨌거나,두 사람은 '玆'의 讀音을 '현'이라 명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玆'의 당시 성운학적 音價가 '자'인지, '현'인지는 확단할 수 없을 일. 玆의 독음에 있어 '자'가 일상적이고 '현'은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현'이란 발음 부기가 없는 바에야 그냥 '자'로 읽어야하는 것 아닐까? 앞의 사유는 '黑山의 黑'이 음침하고 무서워서 '玆山'의 '玆'로 취칭했다는 것뿐이다. 만약 그런 '幽晦可怖' 사유로 꺼려졌다면 오히려 '인자할 慈'와 통하는 '자(玆)'가 더 합당했을 일. '자(玆)'에는 '초목의 싹이 자라다'라는 희망과 낙관적인 뜻도 들어 있다. 굳이 '검을 黑,玄'에 상응하는, 어두운 이미지의 '현(玆)'에 의지할 필요는 없었을 것. 더구나 玄이 두번 중첩되는 '玆(현)'이라면 더 어렵고 불편한 일 아닌가? 그냥 玄을 한번 쓰고마는 '玄山'이 실용적 차원에서 차라리 족했을 것. 실제로 '검을 玄'은 赤黑色을 말하며, '玄色, 玄衣'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니 <자산어보>를 굳이 '현산어보'로 바꾸어 부를 객관적 논거는 부족하다. 필자의 추측이다. 우리 시문에 '이곳, 여기'라는, 장소 지칭 詩語로 '자산(玆山)'은 곧잘 등장한다. 그렇게 장소를 지칭하는 '자산(玆山)'사례는 꽤 많다. 그러니 흑산도에 유배온 정약전도 편지 등에서 '이곳 흑산'을 '자산(玆山)'으로 지칭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그 '자산(玆山)'의 '자(玆)'에는 '검다(黑)'라는 뜻도 들어있다. 두 형제가 제시한 "玆者黑也" 사정에 부합한다. 그러니 '자산(玆山)'이 곧 黑山으로 어렵지않게 통용되었을 것.. 그리하여 바깥 사람들 역시 '흑산'의 정약전을 '자산(玆山)'이라 부르게 된 것 아닐까? 결국에는 黑을 피하게 되었으며, 그 '자(玆)'의 어감 어의도 밝고 따뜻해진다. <자산어보>를 <현산어보>로 바꾸자는 것은 한쪽으로만 치우쳐있다. 흑산도의 黑山, 즉 黑色,玄色을 대신한다는 '지명 대체' 차원에만 너무 집착한 것 아닐까? 정약용이 중형 정약전에게 쓴 편지를 보면 '자산,다산'이 대비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자산,다산'의 '아' 母音 조화가 형제지간에 퍽 어울린다. 그때의 玆山 茶山 역시 이중적인 뜻일 것. 장소를 뜻하는 지명,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요컨대, '자산(玆山)'은 중의적 기능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판단한다. '이곳 유배지, 흑산도'를 지칭하는 장소어로서 대체 지명이었다. 또한 '여기 유배객 정약전'을 가리키는 호칭어도 되었던 것이다.
정약용 역시 그 시문에서 중형 정약전을 순화된 표현, '玆山'으로 호칭하였다. 평소 仁慈하고 德있는 형이었으니, 더 어울릴 법한 호칭이었을 것이다. 위와같은 사정 등을 종합해보면, '玆山'을 굳이 <현산>으로 불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분들이 바꾸려했으면 '玆山(현산)'보다는 '玄山(현산)'쪽을 먼저 선택했을 일. 그곳 현지, 당대 사람들이 黑山을 '현산'으로 부른 사례 역시 실증 확인된 바도 없다. 이하, '자산(玆山)'이 등장하는 정약용 詩文 자료이다. 아울러 '자산(玆山)'이 '이곳'을 뜻하는 장소 지칭어로 나오는 일반 사례도 소개한다. 이 경우는 물론 '자산'으로 독음된다. 또한 '검을 玄'이 사용되는 '玄衣, 玄色' 사례도 소개한다.
ㅡ9일에 寶恩山 정상에 올라 (강진현 北5리에 있음),....1803년 늦은 봄,강진읍 牛耳島를 바라보며 [九日 登 寶恩山絶頂 在 康津縣北五里 望 牛耳島] 최정상에 올라 西쪽을 바라보니 바다 속에 산들이 얽혀 있고, 연운(煙雲) 사이로 보일락말락 하면서도 나주(羅州)의 여러 섬들이 대체적으로눈앞에 역력하였다. 다만 어느 것이 우이도(牛耳島)인지 그 분간이 잘 안 되었다. 그날 중이 하나 따라왔었는데 그 중이 말하기를, “보은산(寶恩山)을 일명 牛耳山이라고도 하고 그 정봉이 둘 있는데 그것은 형제봉(兄弟峯)이라고 하지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면 그게 모두 牛耳山인데 그 봉우리 이름이 兄弟峰이라니 그 山 역시 자못 불우한 산이로구나. 그리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이 들어 돌아와 다음같이 읊어보았던 것이다.
羅州海와 耽津이 二百里 거리인데 / 羅海耽津二百里 험준한 두 牛耳山을 하늘이 만들었던가 / 天設巃嵷兩牛耳 三年을 묵으면서 風土를 익히고도 / 三年滯跡習風土 여기 또 있는 玆山을 내 몰랐네 / 不省玆山又在此 -흑산(黑山) 이름이 듣기만 해도 으스스하여, 내 차마 그렇게 부르지 못하고, 書札을 쓸 때마다 자산(玆山)으로 고쳐 썼는데, 자(玆)란 검다(黑)는 뜻이다. (-원주 - 黑山之名。幽黑可怖。余不忍呼之。每書札改之爲玆山。玆者黑也) 사람 눈은 그 힘이 멀리 보지 못하여 / 人眼之力苦不長 百步 밖의 眉目도 분간을 못하는데 / 百步眉目已微芒 더구나 濁酒 같은 안개 구름 껴있으며 / 況復雲霾濃似酒 눈앞의 島嶼도 자세히 보기 어려움에랴 / 眼前島嶼猶難詳 먼 瓊雷를 騁望(빙망)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 / 瓊雷騁望嗟何益 괴로운 마음 쓰라린 속을 남들은 모른다네 / 苦心酸腸人不識 夢中에나 서로 보고 안개 속을 바라보다 / 夢中相看霧中望 눈 커지고 눈물 말라 天地가 어둠(黑)이라네 / 目穿淚枯天地黑 ㅡ만청[晩晴].......1806년 6월3일 이후, 여름
늦바람에 雨氣 기운은 걷히고 / 晩涼收雨氣 개인 빛이 절 禪樓에 들어오네 / 晴色入禪樓 해 비친 봉우리 누르스름하고 / 映日峯黃嫩 바람 머금은 대나무 푸르러라 / 含風竹翠柔 마음은 머나먼 滄海 밖에 있는데 / 心隨滄海遠 몸은 고작 老僧과 함께 있다네 / 身與老僧謀 怊悵해라, 저 玆山에 가는길 / 怊悵玆山路 작은 小舟가 潮水 머리에 보이네 / 潮頭見小舟 ㅡ유합쇄병(餾合刷甁)을 부쳐온 운에 화답하다........1807년 봄. [和寄 餾合刷甁 韻] -내가 앓는 고질적인 옴이 근래에 더욱 심해 손수 신이고(神異膏)를 만들어 발라 나았으므로 이를 '자산(玆山)'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 余宿疾瘡疥。近益熾苦。手製神異膏以療之。分寄 玆山 이놈의 옴(癬疥) 淫淫하여 늙도록 낫지 않아 / 癬疥淫淫抵老頹 몸뚱이를 茶 볶듯이 찌고 쬐고 다 했다네 / 身如茶荈備蒸焙 데운 溫湯에 소금을 타 고름도 씻어내고 / 溫湯淡鹵從淋洗 썩은 풀 묵은 뿌리 뜸 안 뜬 것이 없다네 / 腐草陳根莫炙煨 蜂房을 배게 걸러 거기에서 즙을 짜고 / 密濾蜂房須取汁 뱀허물을 재가 안 되게 살짝만 볶은 다음 / 輕熬蛇殼恐成灰 丹砂 넣어 만든 약을 同病相憐 마음으로 / 丹砂已熟憐同病 玆山의 使者 오기만 두고서 기다린다네 / 留待玆山使者來 ㅡ중씨께 올림 - 신미(1811,선생 50세) 겨울
...(전략)... ○ 2천 글자를 다 읽고 나면 곧바로 국풍(國風,시경 국풍)을 가르쳐 주어도 저절로 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주가 없는 자는 비록 먼저 1만 글자를 읽더라도 역시 유익됨이 없습니다. 학기(學箕, 다산의 族姪, 자 希說)가 그의 아들을 집 아이들에게 의탁하여 글을 배우도록 하였는데, 그 아이들의 얼굴 모습이 준수하여 형수씨가 보고서는 학초(學樵)의 후사로 세우고 싶어하였습니다. 무장(武牂,정학연)과 문장(文牂, 정학유) 두 아이들도 큰 욕심이 생겨 그를 끌어다가 당질(堂姪)로 삼고 싶어서 학기와 서로 의논하였더니, 학기(學箕)가 말하기를, “자산(玆山)과 다산(茶山)의 뜻이 데려가고 싶으시다면 나는 당연히 바치겠다.”고 하였답니다. 두 아이들이 茶山으로 편지를 보내왔기에 답하기를, “일로 보아서는 매우 좋으나 예(禮)로 보아서는 매우 어긋난다. 禮를 어길 수는 없다.”라고 하니, 두 아이들은, “禮의 뜻이 이미 그러하다면 마땅히 계획을 파하렵니다.”라고 했었습니다. 〇二千字旣讀之後。直授國風。亦自能通。其不才者。雖先讀萬字。亦無益矣。 學箕字希說 託其子於兒輩。使之學文。其相貌俊秀。嫂氏見之。欲爲樵也立後。 武文兩兒。亦生大慾。欲引之爲堂姪。與箕相議。 箕曰 玆山茶山之意。若欲取之。吾當獻之。 二兒書來茶山 答曰 於事甚好。於禮甚乖。禮不可違也。 二兒曰 禮義旣然。當破計矣。 ㅡ<참고사례> ㅡ'장소 지칭어로서 玆山' 詩語 사례, ㅡ금강산 정양암(正陽菴)에 올라가서 ㅡ가정집, 가정 이곡
이 玆山 볼수록 怪怪하고 奇奇하여 / 玆山怪怪復奇奇 詩人과 畫師를 수심에 잠기게 하네 / 愁殺詩人與畫師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보고도 싶다마는 / 更欲登臨最高處 다리 脚力 좋을 때를 놓쳤으니 어떡하누 / 噬臍脚力未衰時 ㅡ'孤山'만 범람하지 않았기에 기해년(1659)...고산 윤선도 〔孤山 獨不降 己亥〕 -서재(書齋)의 여러 시편에 화운하다. 푸른 滄浪이 별안간 靑溟 바다로 넘실넘실 / 滄浪便作靑溟闊 어디가 長郊이며 大江인지 구별할 수 없네 / 莫辨長郊與大江 무슨 일로 이 玆山만 매몰되지 않았는지 / 底事玆山不埋沒 千岡 언덕 萬阜 구릉 금세 물에 잠겼는데 / 千岡萬阜忽騈降
ㅡ이하 관련자료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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