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어떤 마지막 선택.
2주 전이다.
전국적으로 호우경보와 호우주의보가 예고되던 토요일,
아내와 함께 고창에 내려가게 되었다.
여동생의 시아버지 상사에 조문.
차를 직접 몰고 가는 길이 부담스러워
고속버스를 선택했다.
일기예보와 다르게 고창 쪽은 평온했다.
흥덕을 들러서 3시간 10분 거리.
고창 읍내는 조용하고 한가하게 보였다.
터미널을 걸어나오다가 연수원 동기 변호사와 마주쳤다.
광주 송정리가 집인데도, 부친 선영을 고창에 모셨다고 했다.
그래, 고창 땅이, 고창 하늘이 아늑해 보인다.
장흥과는 또 다른 맛의 산과 들판이다.
장례식장에 걸맞는 통상적인 절차,
망인에게 재배를 올리고,
상주에게 맞절을 하고,
식사를 하고,
가벼운 위로의 말을 건넸다.
94세.
호상이었던 셈.
어느 자식에게든 호상은 없다고 하지만,
호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아무도 울지 않는다.
그래, 아무도 울지 않구나.
무거운 짐을 터는 듯한 홀가분한 분위기.
가을의 초입이라지만 날도 무더웠다.
바깥으로 나왔다.
장례식장 앞의 밭 작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풍성했다.
가을빛 아래에서 아줌마가 밭일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어느 허스름한 차림새의 할머니가 옆에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울었다.
우리들 어린 시절에 듣던 그런 울음 소리.
그래,그때는 참 많이들 울었었지.
안에서는 못 울고 밖에 나와 우는 모양이다.
통곡.
옆에서 그분 자식인 듯한 사람이 달랜다.
80줄 할머니 모습이다.
요즘에도 저렇게 서럽게 울다니, 누구인가?
사촌 여동생이라고 했다.
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촌 오빠를 위해 저렇게 목놓아 울어주다니.
제 자식들도 울지 않는데.
저 할머니는 왜 우는 것일까?
남다른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망자의 죽음이 너무 불쌍하여 연민의 정으로 울 수 있다.
오랜 요양병원 생활 끝에 혼자서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키지 못햇다.
아무도 울어주지 않는 세상에,
그래, 자식이 아니라도 망자를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겠지.
아내가 덧붙인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더 서러워져 울 수도 있어요.
그래, 오빠의 죽음을 보는 순간에 불쌍한 자신이 더 서러워 울 수 있지.
그래,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세상이라면.
어디에 모시느냐는 질문에 상주가 대답하였다.
어머니를 모셔둔 고향 영광의 밭에 아무래도 나란히 모셔야겠습니다.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작은 사건', 아니 '큰 사건'을 듣게 되었다.
20년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긴 유언이 있었다.
남편이 나중에 죽거든 절대로 내 옆에 묻지말라.
저 위인 꼴보기도 싫다.
아예 안 보이는 자리에 떨어져 묻어라.
남편 분이 방탕한 생활을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바람을 피고 술 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소심 착실한 범생이 생활을 하셨다고 했다.
평생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아내의 기준과 가치관에는 여러모로 부합하지 못했다고 했다.
달리 아내에게 큰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내 역시 활달 성실하고, 자식과 가정에 충실했다.
다만 언제나 큰 꿈과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다.
저 남편은 내 그릇이 아니라고 아내는 늘 생각했다는 것이다.
필시 그는 아내의 말을 묵살하고 들어주지 않았을지 모른다.
컨베어벨트처럼 돌아가는 장례식 절차.
살아있는 자식들에게는 자식들 기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두 분을 따로 모시는 것은 자식들에게도 남들에게도 우습다.
비효율적이다.
어머니 옆에 나란히 모시기로 자식들은 이미 결정하였다.
그래,그럴 수 밖에 없겠지.
망자의 장례는 생자들을 위한 것이야.
서울로 돌아오는 길.
먼저 유언을 남긴 그 어머님이 안쓰럽다.
두 분 사이에 상징적인 칸막이라도 해드려야하는 것 아닌가?.
그래, 그 사이에 작은 나무, 돌 하나라도 가려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어떻게 하지?
고 이청준 선생님은 '1봉 雙석관'이었다.
레일이 깔린 석관 두개를 미리 만들어 두시고서 한쪽을 차지하셨다.
'미망인'더러 나머지 한쪽에 들어와야한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을까?
그분은 생전에 너무 고독했었기에,
사후의 쓸쓸함이 두려워 아내를 옆자리로 불러 들이려했던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하지?
아내가 말한다.
그 어머니 유언도 이해가 가네요.
그래, 우리도 떨어져 묻히면 좋을지도 모른다.
부부가 죽어서도 꼭 나란히 누워야 하나.
금실좋았던 부부에게는 영혼이 오가는 묘도를 만들어준다지만.
가까이 있으면 부딪치고 토닥거리잖아.
그래, 조금 떨어져서 때로 그리워하면 나름 좋은 일 아닌가.
우리는 어떻게 하지?.
길이 너무 멀어 장흥 땅으로 가긴 싫고,
화장인가. 매장인가.
봉분과 비석을 만들 필요가 있나.
우리는 어떻게 하지?
내 아들과 딸들이 과연 나를 위해 섧게 울긴 하려나?
나를 찾아 오려나?
땅에 묻혀나하나,하늘로 날아가야하나.
물로 흘러가야하나, 나무 뿌리로 들어가야하나.
그래,저 세상은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지?
내가 먼저 죽으면 내 아내는 나를 어떻게 처리할까?
내가 총총하게 빵빵하게 더 오래 살 수는 있을까?
남자가 더 오래 살면 그도 문제라는데.
그래,남은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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