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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두겠다면 승진시키겠다~
작성자조석현 이메일[메일보내기] 작성일2013/08/15 10:47 조회수: 414

이 글은 문학가 김정빈씨의 책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숙종때 이관명이 수의어사가 되어 영남지방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숙종은 그에게 영남지방에 어떤 폐해가 있는 지를 물었다. 



 이관명이 복명하였다. 



 "후궁 아무아무의 소유로 되어 있는 섬에서 수탈이 심하여 민폐가 많사옵니다."



 왕이 진노하여 이관명을 꾸짖었다.



 "과인이 일국의 임금으로서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마음대로 줄 수 없다는 것이냐?"



 숙종은 철여의를 들어 앞에 놓은 상을 내리쳐 박살내었다. 그러나 이관명은 굴하지 않고 아뢰었다.



 "상감께서 소신을 그리 탓하시오면 오늘로 관직을 물러나기를 청하옵니다."



 "그만둘 테면 그만두라!"



 왕은 곧 시립하고 있던 승지에게 교지를 쓰도록 준비시킨 다음 명하였다.



 "말썽 많은 고집쟁이 전(前)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하노라."



 이관명은 물론 승지도 깜짝 놀랐다. 그것은 면직이 아니라 일계급 승진이었던 것이다. 

 승지가 상감의 명을 받들어 교지를 다 쓰자 다시 어명이 내렸다.



 "또 한 장 더 쓰라. 전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을 제수하노라."



 두 사람이 다시 놀랄 사이도 없이 왕이 다시 명하였다.



 "전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호조판서를 제수하노라."



 이렇게 하여 이관명은 단숨에 3계급이 올랐다.



 숙종이 이관명에게 가만히 말하였다.



 "앞으로도 민폐를 근절시키는 데 더욱 노력해 주기 바라오."

덧글 ()

송기병  / 2013-08-15-12:09 삭제
ㅎ 조상무도 한번 써먹어 보시지 그랴?
김원배  / 2013-08-16-14:43 삭제
설마 숙종이 그랬을까?
허주회  / 2013-08-16-20:53 삭제
한 번 써먹어 볼라다가 진짜로 그만 두게되면 어쩔라고,,
조석현  / 2013-08-19-16:07 삭제
역쉬 허도사님이 걱정 해 주시구만~

능력,배짱,타심통 이 세가지가 다 있어야 헴.  쩝~
정완식  / 2013-08-26-19:05 삭제
《Re》김원배 님 ,

김 정빈 저자께 자료의 출처를 확인할 필요가 있네~. 리더쉽에 관한 책이다 보니 fiction일 수도...우리네 현실에선 가능성이 아조 낮다고 봐야허제~ㅜㅜㅜ.

암튼, 실화라면 숙종과 이관명 판서 두사람 모두 본받아야 할 인물들이네~ㅎㅎㅎ
조석현  / 2013-08-27-12:05 삭제
《Re》정완식 님 ,

정사에 없는 야사, 야담인 것 같고

출처 확인이 어렵네~~~
박형상  / 2013-08-30-09:44 삭제
..이관명.......을 더 살펴보면



..일단은 훌륭한 조선 선비..그에 대한 개인적 평판은 무난하고 긍정적인 것 같음.

정략적 처세보다는 학문지향적 선비.



...1661년 생..출신 성분부터 크게 남달랐음........조부 영의정,부친 이조판서..장인 좌의정



...1687년 소과 합격....26세이니 늦은 편임



...1695년 익위사 세마 임용...이른바 음관 특별채용.

               ..그때 34세까지 대과에 급제하지 못했다는 말

           <음직 특채>..소과 합격만으로,또 특별공로로 명가자제들을 음관으로 특채하는 관행.



....1698년 함열현감

     1698년 가을...알성시 문과 급제..<알성시>는 임금 얼굴을 보고 시험보는 특별시험임.

         명가자제들은 '소과 + 대과'라는 정식 통로 를 거치지않고 ..

         '소과 + 음관 + 별시 대과'를 거쳐 가는 특별 통로를 이용함. .예).알성시,춘당대시



         이른바 보통사람들은 때론 잔치날에 열리는 특별시험 헤택을 볼수도 있으나 

        대개 '소과 + 식년시 정기시험 대과'를 거쳐가야 함. 

         시골 촌놈한테는 ...박이 터지는 시험이고 ....조선 후기로 갈수록 지극히 어려워짐.

 

        이관명은 ....알성시 급제 이후.....큰 잘못 없이...또한 그 능력도 있어... 승승장구....



1722년..그러다가 경종 시대............경종이냐? 연잉군(영조)냐?  

          선택의 기로에서 ......당색과 가운을 걸고 .....온몸으로 치고박던 시절.

          결국 신임사화로 .....동생 이건명이 노론 4대신으로 목숨이 날아감.....

          ..... 형  이관명 역시 유배됨



1725년..그러나 반전!... 드디어 영조 등극....

            이관명....우의정, 좌의정....탕평책 반대 노선..노론의 핵심



..그 100년후 인물 정약용(1762~1836).

            ...전형적인 시골, 남인 출신..

           부친이 진사(소과)이고.. 그 직근 3대는 포의 집안(.....벼슬이 없다는 소리임)



           .....22세 소과 합격. .....28세 대과 급제 (갑과 2위)

           그런데...성균관의 최우수 성적에도 불구하고 거듭 대과에 낙방하였음 

                      (노론 출제관들한테 계속 물을 먹음)

              이를 보다못한 정조 임금이 ...노론 고시관을 ....남인 채제공으로 바꾸어줌

              그러면서 소론 명가 서영보를 갑과 수석으로 올려놓고 정약용을 2등으로 합격시켜줌



       나중의 정약용......정조의 복심 측근이 됨...안될 수가 없음.

       비록 책속의 주장이긴하나..

                 정약용은 개인적으로 과거제 개혁, 특히 특별시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함.
박형상  / 2013-08-30-10:01 삭제
..그러니 변덕많고 바람끼 많고 책략적인 인물........그런 숙종 앞에서 .

  어느날.......급등 급락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

그런 숙종일지언정....이관명 집안을 함부로 쉽게 대하기도 어려웟을 것임.....

...........나중에 영조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음...



한편....정약용 선생이 시문에서 .....드러내놓고 징징(?)대고 늘 찍어대는 소리가 ..

..(그놈의 자식들-공부않고 놀고 쳐먹으며 출세하는)....경화벌열 명문거족의 자제(새끼)들임.....

    그렇다고 정약용이 이관명을 비판한 사실은 없으며 ..비판했을 가능성도 없어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