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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약용과 '장다리꽃,채화'
작성자박형상 이메일[메일보내기] 작성일2013/07/15 23:20 조회수: 329

ㅡ지난해 11,26자로 써둔 글인데,

 이번에 현지의 댓글에 답변도 드리면서 한번 올려봅니다.







ㅡ정약용과 '장다리 꽃, 채화' 



 

-정약용의 시문에 '채화(菜花)'가 수차 나온다.

'채화호접(菜花蝴蝶)','채화정(菜花亭)'이 나온다.



그 '채화(菜花)'를 두고 '채소꽃 일반'을 지칭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나물꽃,채소꽃' 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

그렇게 옮기는 편이 정확할련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적 분위기를 살려,남쪽 강진 땅의 菜花에 관한 한,

 '장다리 꽃'으로 받아들이고싶다.

한국고전번역원 번역도 그러하다.



유채꽃 비슷한 모양의 노오란 봄꽃이다. 

油菜花도 菜花 아닌가싶다.

정약용은 남쪽 땅에서 '유채화'를 보지 못했던 것일까?

'유채화'란 말은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배추 장다리', 그 긴 줄기 끝에 맺히는 노란 꽃들,

거기 장다리 꽃에 매달리듯 찾아드는 '노랑나비'.

서로들 잘 어울린다.

(아마 그 밑 둥지에서 겨울을 보낸 배추벌레가 노랑나비,흰나비가 되었을지 모른다)



 정약용은 강진에 오기 전에도 물론 그런 '채화꽃'을 몇 번 보았었다.

또한 1차 유배지 경상도 장기 땅에서도 마주하긴 했었다.

낯설지 않은 꽃이었다.



 1807년 봄,

남녘 강진 땅,

유배지에 흐드러지게 핀 '장다리 꽃밭'이 유달리 인상깊었다.



그 해 봄에 정약용은 묵은 病을 털고 모처럼 일어났다.

바깥을 내다보니,'장다리 꽃'이 그 울타리 안에 있었다.

그 꽃이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어도 

따쓰한 봄바람을 타고 '나비'가 훨훨 날아들었다.



그 해 봄, 

정약용은 그렇게 '나비'를 끌어온 '장다리꽃'이 등장하는 詩를 연거푸 짓는다.

흑산도 손암 형님에게도 '장다리꽃 정원'을 말하며 시를 보낸다.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는 꽃,

노오란 '장다리꽃'은 봄의 전령사이다.

'장다리 꽃밭'을 제 집처럼 찾아드는 '노랑 나비'도 봄의 전령사이다.



매년 어김없이 피어나며 '나비'를 오게하는 꽃,

'강진의 장다리 봄꽃'에서 

유배객 정약용은 '인생의 희망'을 감지했을지 모른다.



그런 봄에 '꽃'과 '나비'의 한짝 어울림을 보았다.

'채화호접(菜花蝴蝶)'이라야 역시 적격이다.



 정약용은 해배 후 고향에서 '채화정(菜花亭)'을 짓는다.

아마, '채화'를 알아주고 찾아오는 '나비'를 기다리는 심정이었을 것.

실용주의자 정약용이기에 채소 조달이란 현실적 목적도 있었을 것.



"장다리꽃, 온갖 百菜가 여기 다 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로 날아오라"



 다시 세월은 흐르고, 

고향 초천에서도 '장다리 꽃'은 신의있게 피고지고,

그러나, 해배 후 18년이 지나도록

정약용이 기다리던 '그 나비'는 끝내 오지 않았다.

유배 18년을 지내고 돌아온 정약용,

고향에서 18년을 다시 보내고 죽었다.





 이하, 菜花를 언급한 정약용의 시를 한데 모아본다.



 ㅡ족부 '해좌옹'의 산중 집에 유숙하면서 짓다

[留題 族父 海左翁 山居]

ㅡ제3수

울창한 저 山色은 해맑기 그지없고 / 蓊蓊山色澹新晴

졸졸졸 시냇물소리 은은하게 들리는데 / 㶁㶁溪流細有聲

수양버들 그늘 아래 편하게 소 누웠고 / 楊柳陰濃牛臥穩

'채화꽃' 따스한 바람 경쾌하게 나는 제비 / 菜花風暖燕飛輕

이따금 筆墨으로 심원한 회포를 풀고 / 時從筆墨幽懷暢

날마다 田園 거닐며 고상한 흥취 즐기네 / 日涉田園雅趣成

이리저리 거니는 게 너무도 좋은 유람 / 正耐逍遙陪勝賞

서글프게 돌아갈 길 행여 묻지 말았으면 / 可堪惆愴問歸程





 ㅡ기성잡시(鬐城雜詩) 27수

ㅡ제25수

날 따뜻해 작은 밭에 '채화꽃' 활짝 피니 / 小園風暖菜花開

노랑나비 퍼렁벌레 번갈아 드나든다 / 黃蝶靑蟲遞去來

저걸 보면 莊生이  物化를 알았나봐 / 證得莊生知物化

竹杖 짚고 느릿느릿 거닐면서 서성대네 / 徐携竹杖悄徘徊





ㅡ장다리 꽃에 나비를 읊다.......1807년 봄, 강진 묵재

[賦得 菜花 蛺蝶]



사랑채 아래 세 두둑 '장다리밭' / 舍下三畦菜

나무 의지해 울을 대충 쳐놨는데 / 疎籬傍樹開

보면 꽃은 가만히 있으려 하건만 / 且看花欲靜

누가 부추겨 나비를 오게 했는지 / 誰起蝶先來

病든 날개는 꽁꽁 얼어붙었어도 / 病翅猶全凍

꽃 탐하는 마음은 그래도 안 식었나봐 / 芳心獨未灰

봄바람은 신의가 대단해서 / 春風大有信

언제든지 너희와 함께 돌아온단다 / 每與爾同回





ㅡ'손암(작은형 정약전)'에게 받들어 올리다.........1807년 봄, 강진

[奉簡 巽菴] 

ㅡ소자유(蘇子由)ㆍ소자첨(蘇子瞻)이 서로 주고받고 했던 여러 시의 운에 차한 것임

ㅡ제10수

'장다리꽃' 庭院에 먼지라곤 하나 없어 / 菜花庭院一塵空

病을 털고 일어나 옛 圖書를 다시 들추네 / 病起圖書續舊功

꾀꼬리가 오지 않아 봄은 그저 적적하고 / 黃鳥不來春寂寂

綠陰이 점점 짙어 대낮인데 침침하네 / 綠陰初漲晝濛濛





ㅡ'소동파의 과령시'에 화답하다.........1807년 봄, 강진

[和 東坡 過嶺韻]



귀양살이 7년을 惡食으로 살았기에 / 囚居惡食七年堪

보릿잎 국이라도 냉이처럼 맛있다네 / 麥葉羹來已薺甘

타관에 와 살면서 있는 곳이 연북인데 / 異縣生涯依硯北

중국의 위도로는 여기가 바로 회남이지 / 中原緯度直淮南

                             ㅡ유자가 강진(康津) 땅만 벗어나면 탱자가 되어버림

백자술을 새로 빚어 風濕을 제거하고 / 新醅白刺除風濕

黃連을 잘못 먹으며 장독을 막으려 했네 / 謬服黃連禦瘴嵐

                             ㅡ백자(白刺)는 오가피(五加皮)이다 

病 들었다 일어나서 그 幽懷를 누구에게 말하랴 / 病起幽懷無處說

문 앞 길에 '장다리꽃'만 휘늘어지게 피어 있네 / 菜花門徑落毿毿





ㅡ'채화정'을 새로 지었는데 권좌형이 마침 왔으므로, .........1821년5월5일,단오, 고향에서

소동파의 詩에 차운하여 애오라지 노필을 시험하는 바이다

[菜花亭 新成 權左衡適至 次韻 東坡 聊試老筆]



'채화꽃'의 나비가 봄바람을 즐기는지라 / 菜花蝴蝶嬉春風

이를 좋아한 늙은이 마음 아이들과 똑같네 / 翁性樂此兒更同

개자 송자의 받침은 서로 간격하여 푸르고 / 芥臺菘跗相間綠

매화꽃 복숭아꽃은 제 나름대로 붉구려 / 鐵梅穠桃他自紅

진접암 뒤에선 아이가 나비를 그리는데 / 陳蝶菴後兒畫蝶

섬세하기가 도리어 '청고옹'을 초월하여라 / 纖細却超靑皐翁

이 정자에 菜花라는 편액을 달고서 / 以此亭懸菜花額

나비의 수염 다리를 생초에 잘 묘사하리 / 活描鬚股移綃中

살림살이를 鹽井 밖에 모두 마련했으니 / 家貲悉辦鹽井外

어찌 자연 바다에서만 고기를 잡으리오 / 漁採何須紫燕海

나물 뿌리를 먹어야만 百事를 할 수 있나니 / 百事要先咬菜根

汪生의 이 말을 朱子께서 경계삼았네 / 汪生此言朱子佩

가련해라 유랑의 三九는 차치하고라도 / 且置三九庾郞憐

 하공의 十千의 돈은 애당초 없었다오 / 本無十千何公錢

菜花의 역사 이어져 없는 날이 없어라 / 菜史接續無虛日

오늘 아침에도 오이꽃 핀 것을 기록하였네 / 今朝又記瓜花發

 

[청고옹(靑皐翁) : 청고는 윤용(尹愹)의 호, 조부인 윤두서(尹斗緖)와 아버지인 윤덕희(尹德熙)도 모두 그림으로 유명햇다. 

[나물 …… 경계삼았네 : 송(宋) 나라 때 왕혁(汪革)이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먹고 살면 온갖 일을 이룰 수 있다.”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이에 대하여 논하기를, “내가 보건대 지금 사람들은 나물 뿌리를 먹고 사는 것을 견디지 못함으로 인하여 자기 본심(本心)을 위배하는 지경에 이른 자가 많으니, 경계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한 데서 온 말이다.《小學 善行》

[유랑(庾郞)의 삼구(三九) : 유랑은 남제(南齊) 때의 유고지(庾杲之)를 말하고, 삼구는 유고지가 매우 청빈(淸貧)하여 부추나물 세 가지[부추김치ㆍ삶은 부추ㆍ생부추]만 먹고 살았던 것을 이루는데, 부추 구[韮]자의 음이 구(九) 자와 같으므로 어떤 이가 이를 전용하여 장난삼아 말하기를, “누가 유랑더러 가난하다고 하는가. 어채(魚菜)를 항상 27종(種)씩이나 먹는다오.” 한 데서 온 말이다. 27은 곧 3×9=27을 의미한 것이다. 《南齊書 卷34》

[하공(何公)의 십천의 돈 : 하공은 진 무제(晉武帝) 떄 벼슬이 태위(太尉)에 이른 하증(何曾)을 말하고, 십천(十千)은 곧 천 전(千錢)의 10배인 만 전(萬錢)을 뜻한다. 하증은 본디 의식(衣食)의 사치를 극도로 하여 하루에 1만 전 상당의 성찬을 먹고 지냈던 데서 온 말인데,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젓가락을 댈 데가 없다.”고 말했다 한다.《晉書 卷33》



 

 ㅡ채화정, 두 번째 차운하다 ..............1821년 5월5일

[二疊]

정자 몹시 낮고 작으나 먼 바람 받아들여 / 亭絶低小受長風

시원하기는 바로 높은 누각과 마찬가진데 / 爽涼乃與飛樓同

금년에 꽃나무 일백 그루를 심어 놨으니 / 今年種樹一百本

요행히 여생 동안 고운 꽃구경을 누리리라 / 僥幸殘齡享嫣紅

이미 '노래 비파'는 자식에게 나눠 줄 것 없고 / 旣無歌瑟堪析子

오직 어리석고 귀먹어 늙은이 될 줄만 아네 / 唯有癡聾解作翁

이 정자에 깊이 앉아 주역이나 연구한다면 / 深居玩易此亭裏

어찌 '소하'의 한중 생활만 같지 못하리오 / 何渠不若蕭漢中

옛날엔 다산초당이 남쪽 땅에 있었기에 / 草庵昔在南徼外

아이들이 울면서 淸海를 바라보았었지 / 兒曹日泣瞻淸海

이 정자에선 거문고 타고 또 글도 읽나니 / 此亭彈琴復讀書

이제는 喪이 끝나 차지 않는 것 없다오 / 如今去喪無不佩

'채화정'의 이름을 하늘도 어여쁘게 보아 / 菜花之名天見憐

온갖 채소 무성하여 돈 될 것도 많은데 / 百菜蕃廡多算錢

그대가 마침 단오일에 여기를 왔으니 / 君來適値天中日

날 위해 맑은 노래 불러서 잘 기도해 주게 / 爲我善禱淸歌發

덧글 ()

박형상  / 2013-07-15-23:23 삭제
ㅡ송기병 사장! ....또 길어지고 말았네에~그려 ㅎ



ㅡ현지 친구..적당한 말로 한번 옮겨보시게나...
조석현  / 2013-07-16-09:26 삭제
- '배추 장다리, 무 장다리', 그 긴 줄기 끝에 맺히는 노란 꽃들,

   --> 이 문구는 무 장다리꽃은 노란 꽃이 아니고 보랏빛을 띠니

         같이 쓰지 말고 '배추 장다리. 그 긴 줄기 끝에 맺히는 노란 꽃들,의 표현이 적확할 듯
조석현  / 2013-07-16-09:35 삭제
《Re》박형상 님 ,

- 이렇게 채화를 많이 썻구만

- 내 견해는 그렇네 "채화"는 우리말로 "채소꽃"으로 번역함이 정확한 것 같네

  (나물꽃은 채소중 나물만 특정하고, 가장 많은 무배추를 나물로도 하지만

   채소가 더 어울리니...)

  많은 시를 보니 더욱 그렇고

- 채화정 등 주위에 무,배추만 심었겠나

  시에서도 백채(온갖 채소)라 하고 있음에 명확하고



- 채소꽃 중엔 장다리꽃이 많고 문학적이긴 하네만
조석현  / 2013-07-16-09:46 삭제
집 아래 세 두둑 채소밭 / 舍下三畦菜

성긴 울 나무 옆 열려 있어/ 疎籬傍樹開

보면 꽃은 가만히 있으려 하건만 / 且看花欲靜

누가 나비 먼저 오게 했는지 / 誰起蝶先來

病든 날개는 꽁꽁 얼어붙었어도 / 病翅猶全凍

꽃을 찾는 마음은 그래도 안 식었나봐 / 芳心獨未灰

봄바람은 신의가 대단해서 / 春風大有信

언제든지 너희와 함께 돌아온단다 / 每與爾同回
박형상  / 2013-07-16-10:33 삭제
ㅡㅎ ..무 장다리에 보라꽃이 맺힌다는 것 처음 알았네! 

읍 시내 출신에 농사를 안짓다보니 ㅎㅎ



ㅡ장다리 꽃이 아닌, 그냥 채소꽃으로만 옮기면 그 분위기와 시감이 반감되고 마는 것 같아서..

ㅡ고향에 만든 채화정이야 ....어차피 한자어 '채화' 그대로 옮겨버리면 무난 적합할 것이고..



ㅡ내 의견엔 '채화 = 채소꽃 일반'은 맞지만, 

그 채화 중에 강진땅에서 마추친 채소꽃은 혹 장다리꽃 아닐까?라는 생각

결국 '강진에서 마주친 채화'와 '초천 채화정 채화'를 살짝 분리시키자는 이중전략..ㅎ
송기병  / 2013-07-16-10:57 삭제
박 변! 조대감!

대단들 허이, 둘 다 우리 '장보고함' 멤버들이제 잉?!
조석현  / 2013-07-16-13:01 삭제
상지....

번역도 하나의 창작...

문학적으로 실질적으로 장다리꽃이 낫나고는 생각하네



박학다식한 다산은

어휘를 명확히 선택했다고 가정해 보네

장다리꽃이라 표현할 경우 거기에 합당한 한자를 썼을 것이라는 가정이네



채화 채화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꽃으로 잘 생각지 않는 채소에

그 이용의 실용성과 일반 꽃에 뒤지지 않는 꽃의 아름다움을 갖춘



예) 온갖 채소 무성하여 돈 될 것도 많은데 / 百菜蕃廡多算錢





민초로서 백성의 꽃이라 본 때문 아닐까?

그 채소는 백성들의 사랑하는 먹거리



요즈음 영양과잉의 성인병을 구하는

약초
조석현  / 2013-07-16-13:24 삭제
사랑채 아래 세 두둑 '장다리밭' / 舍下三畦菜

나무 의지해 울을 대충 쳐놨는데 / 疎籬傍樹開



이건 누구의 해석인가?



집 아래 채마밭이

성긴 울타리옆 나무 사이가 벌려져 있어 (보이므로)

(- 아마 시인의 시야로 드나드는 길로 보이는 곳이 열려 있어

  집 마루에서 앉아 보면 마당 아래 텃밭이 뻔히 보이고

  나무곁엔 둘레로 성긴이 울타리가 쳐져 있는 광경..



- 시골에서 우리도 어릴 적 많이 경험했던

   그 익숙한 광경 아닌가?)



꽃 위에 나비가 날아 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는가?



아무리 울이 성겨도 그 사이론 쉽게 보이지 않을테고

울 옆에 나무 한그루가 있어 아마 사립도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열려 있고

여기서 시인은 채마밭을 보고 있는 것~으로



여기서는 개(開)가 중요한 단어인데

이 해석이 쏙 빠지는 것도 그렇고



개(開)는 사실상 이 시상의 시발일세

물리적으로는 채마밭을 열어 볼 수 있고



몸은 병에

처한 환경은 꽁꽁 얼어 붙었지만

봄바람에 마음만은 열려

춘정이 이니 말일세



대자연은 봄은 언제나 신의를 지키니

함께 돌아온다[同回]의 믿음



다산은 언젠가 이 유배도 풀릴까?

봄바람이 불듯이.....은근한 기대까지 있는가?



마직막 단어

회(回)는 다시 소생을 바라는 희망의 상징.....
박형상  / 2013-07-19-20:34 삭제
ㅡ1박 2일 속초 좀 다녀왓네...거긴 비가 소강상태...,..

ㅡ'채화'를 제대로 옮기기는  꽤 미묘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ㅡ'채화풍'이라는 24절기 花信풍에 나오는 채화는 구체적인 꽃일 것 같고, 어떤 이는 '유채화'로 보기도 하고..

그런데 일반론으로 보면 '채소꽃'..북한말로는 '남새꽃'에..해당될 것이고..

그러니 대개의 경우는 한시 원어 菜花를 그대로 사용해버리는 게 무난할 것으로 여겨 지네.

,,'채화정'이란 이름의 정자도 '장다리꽃' 정자로 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채화정'...

 다만, 강진 지방의 채화에 대해선 '장다리꽃'으로 추론해본다는 의미 정도..



ㅡ.......開의 경우는 ..'시선이 열린다, 공간이 확보되다'는 것 보다 

단순히 '꽃이 핀다'의 開 아닐까..

정약용은  그 앞 다른 시에서도.....'채화開'라는 표현도 했었고,...

...그러니 직역에 충실하면...성긴 울타리, 나무 옆에 피었다네..정도?



ㅡ ......回의 경우는 '현지' 의견에 전적으로 절대공감...

정약용은 .....봄바람과...초여름의 꾀꼬리에서... 신의를 찾으며

매년 그들과 함께 새로운 봄을 맞이하면서 .....回....그 해배 귀향을 학수고대 했던 것 같아....
김인수  / 2013-07-24-10:01 삭제
동기 민경훈이 연락을 기다린다네, 신속하게 연락허여 보시게
조석현  / 2013-07-24-10:18 삭제
'채화開'야 당연히 '채화꽃이 핀다'가 맞네

'꽃이 핀다'는 실제 한시를 지어보면 '發,開' 이외의 단어를 찾기 힘드네



하지만 여기서 1연(1,2구) 주어는 세 두둑 채마밭일세

(1연에서 꽃이라는 것은 아직 없네)

(꽃은 2연에서 비로소 등장하네)

즉, 채마밭(주어)이 열려 보이는 것(開 : 술어)으로 해석되네



1연의 채마밭이 열려 있어

2연의 차간(且看)으로 이제 보게 되네

(1,2연의 수미일관)

(1연은 景, 2연은 情의 개입)



-1연은 울타리,나무, 그 사이의 채마밭 등 전체적, 거시적으로 원경을 보는 모습

  [물론 노란 채마밭의 채소꽃도 보이겠지만 시에는 그 표현이 없다])

- 2연부터는 미시적으로 꽃과 나비를 보고 情을 일으키네





아직 1연에는 꽃이 등장하지 않는데

2연 이하의 내용이 1연 해석에 영향을 미쳐 

꽃을 등장시켜 '꽃이 핀다'로 보는 건, 

문법,문구에 충실하기 보다는

문구에 없는 '확대 해석'으로 보고 싶네



시에는 중심단어가 있는데

초반 1연에는 개(開)로 보고 싶네

물리적으로는 채마밭이 열려

꽃과 나비를 보게 되고

시인의 마음도 열리게 되는 것으로



갇혀 병든 가운데에서도

향기찾는 마음이 남아 있는 자신에 이르고



봄바람의 신의에 기대어

자신에게 봄소식이 돌아오길 바라네
박형상  / 2013-07-24-12:06 삭제
《Re》조석현 님 ,



ㅡ저번 다시에서 보여준,현지의 분석 방법을 원용하면



[賦得  蛺菜花蝶]







花欲靜

蝶先來

病翅

芳心

有信

同回



더 줄이면...





同回



그래서 시 제목도 <菜花 蛺蝶>..



..현지가 말하는 의미의 <開>는 

어차피 <疎籬, 성긴 울타리>에 내용적으로 수렴되는 부수적인 것 아닐까? 싶네...
조석현  / 2013-07-25-11:42 삭제
개(開)를 울타리에 부수되는 것이 보다는

채마밭을 열게 하는 것이고

또 은근히 암시하는 것은

시인 다산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으로 보네



다산은 꽃과 나비를 보고

마음을 열고 춘정을 일으키고 

아름다운 꽃다운 마음을 일으키네



- 이런 면에서는 방심(芳心)의 해석을

  "꽃을 탐하는"보다는 "꽃을 찾는"(아름다운 꽃다운 마음)의 새김이 나을 것 같고



그래서 채마밭, 꽃과 나비의 경(景)은

비록 이 시의 주제로 쓴다해도

어디까지나 객관이고 그것을 노래하기 보다는



그 것을 보고 시인 다산의 마음이 열려

방정(芳情)을 일으키고

봄바람의 신의를 믿듯

예전의 임금 총애가 다시 돌아 오기를[回]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보네

[이게 진짜 주제이고 꽃과 나비는 가탁(假託)리아는 견해일세]



그래서 나는 이 시의 시안(詩眼)을

두 자로 뽑으라면 개(開)와 회(回)를

한 자로 줄이라면 회(回)로 보네
조석현  / 2013-07-25-12:20 삭제
그리고 1연 2구의 개(開)를 '(꽃이) 피다'로 번역해 보면

잘 들어맞지 않음을 알 수 있네



우선 그 해석은 이렇게 되겠지



집 아래 세 두둑 채마밭

성긴 울 나무옆에 피었다.



여기서 말이 되지 않으니(채마밭이 필 수 없으므로)

당연히 이렇게 해석을 붙이게 되네



집 아래 세 두둑 채마밭(의 꽃이)

성긴 울 나무옆에 피었다.



그런데 여기서 원래 없는 꽃[花]을 만들어 내야하는 억지가 생겨버리고

( 이 부분은 엄격하게는 2연에서야 등장하는 꽃을 1연부터 시작하는 오류이나

  오히려 '꽃'이라는 생각을 1연에 붙이고 맞다고 보는 혼동,착각이 일어나네)

  - 우리가 쉽게 착각하는 일종의 후광효과의 하나로도 생각되네

  

그리고 성긴 울 나무옆에는 채소꽃이 피지 않고

그 채소꽃은 울타리안 채마밭에 피게 되지 않겠는가?



즉 성긴 울 나무옆엔 길이 있거나 열려 있어

사람이 드나들게 되었고 그 열린 공간으로 채마밭이 보인다로 보아야

물리적으로도 타당하다는 것이네



처음엔 시인이 그곳으로 채마밭을 보고

그 열린 공간으로 직접 가까이 가서

나비가 날아드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기에 이른다보네



적확한 해석만이

가장 자연스럽고

조금이라고 벗어나면

어법이 맞지 않거나 

실제 현실과 맞지 않음을 보네
조석현  / 2013-07-25-12:58 삭제
한시를 지을 때 시인은

단어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고

압운이든 운을 맞추고

꼭 필요한 단어를 선택하고

정확한 표현을 하기 때문에



그 해석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보네
박형상  / 2013-07-26-10:10 삭제
ㅡ아, 거기 그 지점에서 자꾸만 비켜나는 것 아닐까?



"집 아래 세두둑 장다리밭"..이라고 옮긴다고 해서  <장다리밭>을  내용적 주어로 볼 것 아니라...

엄격히 직역하면 ..."집 아래 세두둑 밭(에 심겨져 있는) 장다리"

..즉 <장다리(菜)>..가 내용적 주어인 것 아닐까?.. 이때 <채>는 하나의 식물로서 정약용이 바라보는 물상인 것이고..........아직 꽃이 피기 전....(그러니 처음부터 "꽃"이 등장한 것은 아니고)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1,채 + 2,개 = 3,화 >+ <4,접> 순서로 그 시상이 너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반면에

.......현지 입장에서는 자꾸만 <장다리 (꽃)밭>으로 미리 전제하고서 <꽃밭  = 개 (열린 공간)>로 연결시키는 것 같아...



내가 말하는 것처럼 <개>의 주체가 <채>가 아니라면...현지가 말하는 <개>의 주체는 과연 어찌될까?

<방수?><소리?>..특히 <소리>..의 경우는 이미 '성긴 물타리'라는 뜻이기에, 

즉 그 자체가 막힘이 아닌 열림 상태라서 .... 그 <소리>안에는 <현지가 말하는 식의 개>가 수용되어 있다할 것. ..바꾸어말하면...현지 생각대로라면 정약용은 차라리 <성긴 울타리>가 아니라,<막힌 울타리>를 선행시켜놓고..예컨대, 그 <막힌 울타리>가 어찌어찌해서 헐리거나 무너져.. 열려 있구나.라고 해야 합당할 것.....굳이 작자가 <소리, 성긴 울타리>+ <개> 라고 중언하게되면 "같은 의미의 중첩적 남용"이 되고마는 것 아닐까?..즉 "성기다 = 열려있다"....
박형상  / 2013-07-26-10:26 삭제
그리고 그 작시 시점에 대해서 따로 써둔 글이 있는데..다음 페이지에 ... 새로 올려보겟네..





당시 정약용은 아마 옴으로 추측되는데,,오랜 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일어나...

집 방안이나 마루에서 집 바깥쪽 성긴 울타리의 공간 사이로 장다리 꽃과 나비를보앗을 것이라 추측해보네...



그러니 봄을 맞이하면 누구라도 그렇듯 정약용 마음이 그때 열린 상태야 되겟지만..그 부분은 그 부분인 것이고 ..



시에 나타나는 <개>는 ...세 두둑에 심은.... 장다리가..<.피어나니,開>..나비가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그 시상이 순차적으로 연결되고 ....자연스럽게 진전되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지...



그리고 그 시안을 비록 차등잇게 본다한들 <개>와 <회> 두 개로 보면 부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詩眼은 어차피 작자가 강조하고 전달하려는 하나의 집중된 핵심주제에 일 뿐이니 

<(화+접=)회>는 .....그런 식의 <개>없이도 충분히 무방한 것 아닐까?
조석현  / 2013-07-26-10:50 삭제
아마도 삼휴채(三畦菜)의 해석에서 비롯된 것 같군



상지의 이 해석...



"엄격히 직역하면 ..."집 아래 세두둑 밭(에 심겨져 있는) 장다리"

을 난 동의하지 않네



왜냐면 삼휴채(三畦菜)의 원래 의미를 난

채삼휴(菜三畦)로 보기 때문이네

(위 시문에는 운을 맞추기 위해 순서를 바꿔 採가 마지막으로 왔다 보네)



시를 짓다보면 꼭 이런 문제 부딛치고

엄격한 정형 구조상 어쩔 수 없네



허여 번역자는 이를 다시 헤아려

원 의미를 살려야 하네

[꼭 문구 순서대로 번역하지 않는 경우]



시를 지어보거나 짓는 기분으로 보면 빠를걸세....



같은 얘기지만 옮기는 것과 해석

또 원문과는 따로 놀지 않고 같다 보네



기존의 번역들이 이미 '채삼휴'로 보아

'장다리밭 세 두둑'으로 바르게 옮겼다 보네



바로 채삼휴(菜三畦)이기에 

채(장다리 등 봄채소)는 세 두둑을 꾸미는 말이 되고

그 주어는 밭[畦] 되네



그 밭이 열려 보게 된다는 의미....
조석현  / 2013-07-26-10:52 삭제
또 성긴 울과 개(開)의 중첩문제~~

문제없다 보네

성긴 울은 실제 성긴 울을 성긴 울이라고 부르는 것 뿐

(성긴 울이 있다고 해서 한쪽(나무옆)이 열려서는 안되라는 것이 없고)

[오히려 채마밭의 일반 생김새가 그대로 묘사되었다 보네]

<성긴 울로 싸여 있고 나무도 있고 

  그옆에 채마밭으로 들어가는 길(공간) 또한 필요해

  열린 공간이 만들어져 있고>



실제 시골의 사맆이나 나무울이 성기니까



"집 방안이나 마루에서 집 바깥쪽 성긴 울타리의 공간 사이로 장다리 꽃과 나비를보앗을 것이라 추측해보네..."



이 부분 집안이나 마루에서 보았을 것이다. 동감이네

그러나 성긴 울로 꽃과 나비를 보았다는 동의하기 어렵네



실제 성긴 울로 꽃들을 언뜻언뜻 보일 수 있으나

나비까지 디테일하게 보일 정도로 넓지 않네

(아예 허물어졌거나 훼손된 표현이 아니라면>>>)



그 광경은 적어도 나무옆에 열린 공간(길 등)으로 보았다해야 하고

아님 자리에서 일어나 열린 공간 가까이 가야 보일 것이라 보네

(이 부분은 차간(且看; 또 보니)에서 엿볼 수 있네)

<자리를 옮겼든 아니든 자세히 다시 본다는 것은 확실하네>

[그럴 경우에도 더욱 성긴 울 사이로 다 보기는 어렵다 보네]

[성기다 하나 그렇게 간격이 크지 않는 것이 보통]

--- 이 부분은 어렸을 적 성긴 울로 채마밭을 많이 본 경험을 되살려보네.



꽃이 피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네

꽃이 피었으니 나비가 오겠지



그러나 1연에 꽃이 피었다 묘사하지 않는다고

2연이 부드럽게 연결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네



이러단 한자 해석학? 생길라....



일단 충분히 논의된 것으로 보이니

함께 더 깊이 천착해 보세>>>>>>>>>>>>>>>>>>



건전한 논의는 논의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것 같고

견해가 다를 수 있고

차이가 있으니 발전 또한 있을 수 있지 않겠나.



한우물을 깊게 파다보면

물이 나오겠지.
박형상  / 2013-07-26-11:48 삭제
ㅡ아, 물론 서로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상호의견 개진.

그렇게 <밭>이 열렸다는 식으로 본다면 굳이 <개>를 버금 詩眼으로 까지 평가할 수야?



아마 현지의 논리는 .....작자 정약용의 '열린 마음' 상태에 큰 비중을 두다보니 

시문에 등장하는 미시적 표현일 뿐인 <개>에 너무 과도한 무게를 실어 준 것 아닐까?

즉 시 주제와  작자의 심리,시소재,문구의 혼동 착종 아닐까?



..그리고 <밭>이 주어라는 것도 그렇지..그 ..<삼규채, 채삼규....> 구별논리에 동의하지 아니하지만..설령 운을 맞추기위해 도치시킨다한들 ...운이 도치될 뿐이지 그 주어적 의도가 도치될까?

....또 <삼규채인들, 채삼규인들>..정약용이 실제로 끌어와 말하려는 것은 '장다리'라는 구체적 식물이 아니겟는가?  정약용이 <장다리>를 제쳐두고 <밭>을 말하려햇을까?라는 생각이 드네.

또 단지 그런 근거 정도로 그 주어를 <밭>으로 본다면야 굳이 <개>에게 그런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詩眼 수준으로 평가할 이유는 부족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 

그리고 그런 의미라면 <개>자가 꼭 유일무이하게 합당했을까? 다른 시어 선택은 없엇던 것일까?



ㅡ그리고 <차간>의 <且..>는 정약용 특유의 시어 구사 사례로 .....다른 곳에서도 나오는데,,

......물리적으로 다시 자세히 본다는 의미보다는 .....더 나아가 생각하건데..라는 뜻 정도..

..아니, 정약용이 ..성긴 울타리에 다가가서 눈을 가까이 들이대고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나비가 장다리꽃에 찾아오는 줄을 비로소 알았을까?...



그냥 가볍게 생각해보시게나..



우리 한시의 전형적 양식,,,

ㅡ애초 봄 하늘이 맑고 파랗다, 봄날이 따뜻하다고 말문을 트며 시작해도 무방했을 것.

ㅡ<선경후정, 선경후서>에 해당하는 시.

ㅡ꽃과 나비의 어울림을 먼저 말하고 자신의 소회를 덧붙여 마무리하고 있는 시...





<화자 정약용의 開眼 開心 상태>와 <시문에 나오는 菜+ 開의 開>가 중첩되다보니 

그만 <開>라는 평범한 시어에 과도한 해석을 걸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네..



현지가 전제하는 "작자,화자 정약용의 개안 개심 상태"라는 해석에는 물론 동의하는 바이지만...
박형상  / 2013-07-26-11:56 삭제
《Re》김인수 님 ,

..헐..반갑네..지금서야 다시 보았네...

<연락 완료>.

......고맙네....언제 한번 보세
조석현  / 2013-07-26-13:15 삭제
한가지 간과한 게 있네

집아래[舍下]의 하(下)일세



집과 채마밭은 같은 평면이 아니고

아예 마당보다 낮거나

같은 때는 토방이 있고 마루가 있어

어쨋든 내려다 본다는 것이네



하여 성긴 울의 간격 논의가 무의미할 수 있겠네

곧 울이 높지 않고

관찰자의 높이가 충분히 높으면

울타리 위로 노란 채마밭이 보일테고

그 위에 날아다니는 나비도 잘 보일테니



개(開)를 왜 꽃이 핀다로 해석하고자 하는 지?

개(開)는 엄연히 동사네



다산은 꽃이 피는 과정이나

지금 피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피어 있는 꽃"을 보고 있네



즉 화(花 : 여기서 1연에 양보하여 꽃이 생략되었다 보더라도)개(開)는

꽃이 피는 것을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꽃이 핀다"인데

1연을 잘 보면 꽃이 피는 것을 묘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뭐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노랗게 피었다. 

봄을 맞아 채마밭에 노란 장다리꽃이 피었네 등등의 묘사가 아니라는 거네)



1연은 시인이 내려다 보는 것을 읊은데

꽃이 피고 있는(동사) 것을 보고 읊은 것이 아니라

집아래에서 내려다 보는 채마밭에 전체 상황(세 이랑 밭, 울타리, 나무, 열려진 것,장다리와 그 꽃)

을 보고 있는 것을 읊고 있다 보네



그래서 나는 개는 시(示)를 대신해

운자를 맞추는 자로 해석하네

(각운이 아니라면 아래 하(下)에 상응하는

 "내려다보는 시(示)"를 썼을 테고)



이 부분은 차간(且看 : 다시 본다)에서도 드러나네

이미 1연에사 시(示)로 보았으니 2연에서 다시 본다라는 표현이 적확하네

즉, 2연의 차간은 1연에서 이미 보았다는 반증일세



그리고 차간은 또 본다, 자세히 본다 외에

찬찬히 더 생각해 본다의 뜻 동의하네

어쨋든 다시 보아 꽃과 나비의 움직임에 자신의 생각을 더하고 있네



간(看)의 한자 생김을 보세

시(示)이 그냥 내려다 보지만

간(看)은 눈[目]위에 손을 얹고 보니[手] 자세히 보는 거 아닌가?



개(開)는 시발로 본다했고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는~

그리고 이 시가 그것을 주제로 한 바,

의미를 부여한 것이고

<회>를 정당한 시안으로 보는 것은 같네



1연에 굳이 문구에 없는 꽃을 넣지 않아도

2연부터 꽃과 나비를 매개로 한 주제 연결은 전혀 문제 없고

1연에서 꽃은 설혹 묘사해도 전체 중의 하나일 뿐이고



1연은 시인이 보고 있는 것을 묘사한 것이고



그리고 밭이 열린다에서 밭이 주어가될 수 없다 했는데

사실상의 주어는 생략된 시인이네

시인이 밭이 열려있는 것 등을 보고 있으니

밭이 열린다는 당연히 능동이 아닌 피동이네



또 하나 개(開)를 '열린다'로 곧이곧대로 해석하거나

'핀다'로 해석함에 문제가 또 생기는 것 같네



개(開)를 시(示)의 대용어로, 압운를 맞추기 위한

용어 선택이라고 보면 이는 "보인다"로 해석함이 정확할 수도 있겠네

"(열려야) 보이므로"



실제 시를 지어보면 고충을 알 수 있네

거기에 당연히 시(示)를 써야 하는데

그것이 아닌 다른 용어로 표현해야 하는 고충...



그래서 시를 번역하는 사람은

반드시 시를 쓰는 사람으로 돌아가

역지사지하고 이를 반드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보네



그리고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라도

한시를 꼭 직접 지어보고 용어를 선택해 보면 좋겠네

(한시를)접라고 접하고 정확한 해석에 힘쓰다 보면

짓고 싶고 짓게 되는데....

퇴고를 아니할 수 없고

해석보다 더한 고충과 재미 또한 함께 오게된다 보네

엄격한 정형시에서 노는 멋과 맛이 함께 오네
박형상  / 2013-07-26-14:20 삭제
ㅡ 그냥 끝내려다가 게속 되네그려려 ㅎㅎ

 지금 장흥에 내려가야 하는데 어제 야독 주독이 풀리지도 않고..ㅎㅎ



ㅡ내가 오하려 묻고 싶은 부분.....왜 1연에서 꽃을 짚어 넣고 있다고 말하는지?  

단지 정약용은 '채 + 개'를 말햇을뿐.........꽃을 직접 표시하고 있는게 아니네...

그렇게 피어난 꽃에 대하여... 드디어 <花욕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일 뿐..



ㅡ<開가 동사이다>, <韻자를 맞춘다>,,는 논리는 지금 우리의 논의 쟁점에 직접 상관되거나 아무런 지장을 줄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개>가 동사가 아니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운자가 도치된다한들 주어 파악에는 별 상관이 없으니..



ㅡ문제는 그 <開>를 두고 그렇게 과도하게 확장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느냐는 것?

더 따져보면 ,,<울타리가 쳐진, 세 두둑 장다리밭>이라는게  열리면 얼마나 열릴지도 모르겟네..제주도 유채화밬 처럼 드넓게 펼쳐(展)진 것도 아닐터인데..넓은 바다, 넓은 평원도 아니고...



ㅡ정약용이 문법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그런 의미의 <개>를 사용햇다면 

그 이후 단락에서 그 <개>의 의미를 이어받고 확대 심화시키는 시어로 호응해야 마땅할 터인데

전혀 그렇지 않네.. 그런 <개>의 의미를 이어받는 부분은 없이 그냥 고립 단절되고 마는 것 아닌가?

정약용은 그냥 꽃과 나비 ....이야기로 넘어가네...

즉 꽃과 나비를 말하기 위한 단서로서.... 채마밭 울타리 이야기를 꺼냈을 뿐..

사실 봄하늘과 봄날씨 이야기를 첫 부분에 꺼냇어도 무방했을 일



요컨대, 쟁점은 그렇게 정리되는 것 같네..

현지의 첫 생각..채마밭이 열린다는 <개> 부분에 시의 핵심, 시안이 된다..는 주장에...

나는 그 <개>는 시상의 순차적 전개 과정에서 거쳐가는 경과물 정도..

...단지 <채>가 <개>하다는 정도로 보면 충분할 것...

그 시는 <화 + 접 = 회>라고 보면 충분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

<화자 정약용의 개심 개안 심리 상태>와 <소리방수開>의 <개>는 구별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한 것뿐.



ㅡ그런데.....그렇게 해석이 서로 어긋날 수 있어서 그랬을까?

정약용의 시는 여태 발견된 것이 2500여수인데..

실제로 정약용은 <정형적인 단형시 절구 율시>를 싫어하다시피 잘 쓰지 않아... 

그 분량이 상대적으로 꽤 적은 편,,ㅎㅎ



ㅡ그리고 창작과 번역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나름 별개의 차원 아닐까?

 축구 해설가한테 <너 축구선수 생활 한번 제대로 해보았나>라고 묻는 것 같네 ㅎㅎ

외국에는 비선수 출신, 명문 클럽감독도 꽤 있다하네...바로셀로나 fc?

ㅡ정약용 시만큼은 반복해서 일없이 살펴보고 있다네..ㅎㅎ



ㅡ마침 그런 사례도 있다네..

자신이 쓴 시어 <且..>조합어를 두고 상대방이 그 부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크게 칭찬 해오자,

 ...나는 그저 별다른 의도 없이 짝을 맞추려고 단순하게 사용했을 뿐...이라는 답신 편지를 

정약용이 보내주고 있는 사례도 있다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례일 것 같아....
조석현  / 2013-07-26-15:06 삭제
나는 왜 1연의 해석이 엇갈리는가에 대해 충분히 말했네

실제 그대로 해석하면 해석이 잘 안되는 이유를



그것을 한시의 정형시, 운율 특성에 따른 것도

그리고 이것을 해석하는 이가 그 조립과정을 생략하여

있는 그대로 해석하다 엇갈리는 것도



하여 정확한 해석에는 반드시

그 짓는 과정과 형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도



대개 해설가가 선수였던 경우가 많지 않는가?

한시도 예전엔 시인이며 해설가였는데

그래도 서로 논란이 많았은데~ 한자의 특성상 부분까지 포함되어

지금껏 많은 여러 해석이 있음은

결국 불완전함을 이야기하는 반증이고



나는 많은 부분이 본문에 충실하지 않거나

문법에 충실하지 않고 시작과정을 간과하고

선입견으로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 걸 안타까워 하네

그리고 인터넷 시대에 이를 검증치 않고 배포하네



1기1회요

1의1문이라 보네

< 그 길이 쉽지는 않지만 >

그래서 번역에 무서움을 느끼네

오류와 잘못이 생길 수 있지

그럴수록 그 구조의 하나하나와 전체를 여러번 보고 검증하고

확신이 들 때까지 음미하고

그 과정에서 시인도 되어보고

나라면 어찌 표현했을까? 어떤 상황인가?

많은 것들이 요구되네....



논의를 하다 [下]를 간과한 전개의 오류도 파악되고

이런 과정에 많은 발전, 생각 가다듬어 지네



개(開)도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네

시발이며 감추어진 복선과도 같고(중의)

~나는 그 내면의 연결관계를 처음 나타내는 시어로 보았고



시(示)의 대용어로 보는 것도

통상 거기까지 들어가지 않고 

개(開)에만 매달리면 엉뚱한 해석으로 흐른다는 것도



어쨋든 1연을

채든 채화든 피었네로 해석을 하고자 해도 할 수가 없네 

성긴 울 나무옆에 핀다?



(직역해 보세  



<집아래 세두둑 남새(밭)

 성긴 울 나무옆 피었네>



울은 채마밭 주위의 울일 거고

통상 나무도 울과 함께 있을테고

- 밭 한가운데 나무는 없다



꽃은 피어도 울타리 안에 피었겠지

꽃이든 채든 피었다로는 

현실과도 맞지 않네



거듭 말하지만 1연은

세두둑 채마밭의 전체 모습을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조망하는 것이 틀림없네
박형상  / 2013-07-26-15:50 삭제
ㅡ또 ㅎㅎ



ㅡ한시의 본질론으로 가야할 듯..

.s+v 영어 구문과는 달리 함축적이고 모호하고 다의적 표현이 많다는것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오히려 현지가 말은 <열린 개>라고 하면서 현실적로는 1의적 폐쇄적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닌지?



ㅡ집앞 세두둑에 있는 장다리..로 시작해보게나...



ㅡ나도 실제로 그 장다리 밭을 상상해 보았는데...

그 집안의 울터리 안에도 있을 수 있고, 지금 양평 여주 부근을 지나면서도 볼 수 있지만 

집바깥, 집옆 채마밭에 울타리가 쳐질 수도 있지...

그런데 집안 사랑방 아래 조망되는 세두둑 밭이라면 ..

강진 시골집에서 과연 어느정도 상태일까?  열린다라야 어느 정도 열릴까?



ㅡ현지 말대로 세두둑 (현지는 세두둑 크기를 어느 정도로 가늠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세두둑 장다리밭을 위에서 아래로 조망한다한들 ....그 강진 시골집 안에서...

그렇게 조망된 상태가 ....현지가 설명하는 그런 열린 <개>에 과연 얼마나 부합할 것이며?....

...그 전체 시에서 그런 의미의 <개>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연 詩眼에 합당하겟는가?이네....



난 <1,채  +  2,'필 개' = 3,화>, 현지는 <집안 장다리밭 = '열린 개'>로 ....각자 간다한들 

정약용 선생의 詩心 詩眼에는 아무렁 지장 없을 것 같네....

그에게는 < 화 + 접 = 동회>가 핵심일 터이니까...
조석현  / 2013-07-26-18:11 삭제
수류화개(水流花開)
박형상  / 2013-07-26-20:50 삭제
ㅡ그 부분 공감하고...

<삼휴채 + 개> 든 <채삼휴 + 개> 든.. 韻을 맞추는 작시 단계가 아닌,

 창작 후 해석 단계에 이르러서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이제는 부차적인 것  같고..



ㅡ 그 부분 그만두고....새로운 생각.



..이때까지 <장다리 밭을 둘러싸고 있는 성긴 울타리>를 전제하여 여러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심지어는 장다리밭 안에 나무가 있네없네 하면서....



ㅡ그런데....정약용의 <소리> 사용례나 여타 시인의 <소리> 사례를 검토해보니.....



.....거주지 거처 자체의 울타리의 초라함을 말하면서 

그 은거처 자체의 초라함이나 검소,탈속을 빗댄  경우가 대부분...

즉 여기서도  <세두룩 장다리 밭을 둘러싼 울타리>로 보기보다는 <그 초옥(모옥) 자체의 엉성한 울타리>로 보는 게 합당할지도......꽤 초라한 누옥에서 산다는 것을 비유...



결국 ,,,<사하삼휴채>와 <소리방수개>는 병렬적으로 나열되는 先景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

<삼휴채>를 감싸고 있는 울타리로서 <소리>가 아닐 수도....

그렇게 되는 경우에도 역시 <開>의 의미는  일정하게 제한되는 정도?



ㅡ고맙네..

...현지와의 이런저런 주고받음을 통해서 ........의외의 소득으로 <疎籬> <傍樹> 사례를 다시 알게 되었네그려.......



ㅡ당시 정약용 거처의 주거 조건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아마....혹....길가 나무가 있는 길가 집..<草屋 소리>에 그 바로 옆이나 부근에 <세두둑 장다리밭>이 있는 집..정도? .



......하긴 유배객 정약용의 초라한 시골집 임시 거처에 ...

.집 담장과 대문이 어엿하게 따로 있고 ....

다시 울타리가 쳐진 세두둑 밭이 있고 ....그 옆에 큰 나무 운운한다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울 것.



......<舍>도 문학적으로 옮기다보니 말이 좋아 <사랑방>이지 ....

......실제는 <막사, 움막 수준>일지도 모를 일.

...정약용이 예컨대, 토방 높은 시골 양반집에서 여유있게 격조있게 산 것이 아니라는 점...



ㅡ<방수>를 살펴보니...'단순하게 나무 옆'이라 풀고 있는 시례도 물론 있지만 .....

그 자체로서 '路방수, 道방수', 즉 가로수, 길가 나무를 의미하거나 .....

그 <방수>자체를 보통명사로 사용하는 사례도 있더군....

 <개> 해석여부에 상관없이 ....참조할 수 있는 부분?

또 <방수>에 관한 用事도 가능하지만 이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고....
조석현  / 2013-07-27-10:35 삭제
1연을 보고 바로 어릴 적 시골 풍경에 팍 와닿네

그 <소리(성긴 울)>가 소박함, 초라함을 나타낼 수도 있음은 동의...

울은 보통 동리(東籬)로 도연명이 읊은 뒤 소박함의 상징으로 자주 회자되었네

그리고 실재 성긴 울을 읊은 것이라 보네

시골에서 나무울타리는 거의 다 성긴 울 아니었는가?



휴(畦)와 함께 전체 상황을 보세

두둑 휴, 쉰 이랑 휴로 새기네



먼저 쉰 이랑으로 보면 밭은 텃밭 개념이 아니네

배추밭이라 보고 1마지기(작게 200평 가정)라면

한 이랑(1두둑+1고랑)을 아주 작게 30cm잡으면 15m×44m의 밭이 되네

배추농사를 짓는 것이고~



그냥 집에서 쓸 정도라면

세 이랑의 조그마한 텃밭이 되네



통상 큰 밭은 집과 떨어져 있고

울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네



보통 텃밭은 울이 쳐져 있는데

그 성긴 울은 집마당과 경계이며

빙 둘러져 그 너머는 

텃밭의 경계이기고 하고

집의 경계이기도 하네



사실 어릴 적 우리집 모습일세



그리고 마당과 텃밭에 굳이 울을 친 이유는

마당에 닭을 키우는 경우가 예사고

이들을 막고(실제 다른 동물의 침입도)

나무문(새릅)을 내 보통 어슷하게 열려 있지



보통 나무를 끼고 울이 둘러져 있으면

그 나무에 붙여 사립문을 다는 경우도 예사이지



이 시가 당연히 후연의 서정을 말하지만

난 1연의 풍광이 좋은 건 바로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한 거겠지



또 바닷가라면

또다른 풍광이지

노오란 꽃에 푸른 파도까지 보이면~~

서울 가까이는 대부도 같은 한적한 어촌을 가다 보면

그런 쓰러져 가는 집과 <소리>를 접할 수 있을 것 같네



실제 다산이 이 시를 지은 집이 고증된다면

정말 찾아가 보아서 확실히 검증할 필요가 있어



나도 증조부 시를 번역하면서

현장답사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네

시간이 허락치 않아 자료, 지도 인터넷 등에 의존하고 있지만

언젠가 여유있게 둘러볼 날들이 오겠지.....
조석현  / 2013-07-27-10:55 삭제
시골 양반집만 토방이 높은 건 아니라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 집도 토방이 높은 게 많네

특히 산기슭이나 언덕에 지면 더 그렇고



요즈음 한옥하면 비싸고 좋은 기와집만 보통 생각하는데

사실 실제 서민의 한옥은 초가집에 흙집이 보통 아닌가?

집이 좋든 나쁘든 작든 크든

우리 한옥의 공간 구조는 기본적으로

마당 - 토방 - 마루/방의 3단 구조가 많네

(가끔 평지 등에 지어져 토방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조석현  / 2013-07-27-11:06 삭제
사(舍)가 초가집[草屋] 띳집[茅屋]이었을 거라는 가정 현실적이라 보네

그런데 집을 나태내는 여러 한자말 중 舍를 쓴 이유를 생각해보네



보통 정사(精舍)에서 많이 쓰는데

주로 학문을 가르치거나

정신을 수양하는 곳으로 쓰는 정사.



또 많은 집을 나타내는 한자 중

집 모양 형상은 단연 "舍"자고



집모양(人)의 뜻과

음을 나타내는 여(余)의 결합으로

<나그네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도 있으니



다산이 머무는 집의 표현으로 제일 걸맞다 생각해보네

여기서 알 수 있듯

시인은,다산은 한 자 한 자 적확(的確)하게 썼다 보네
조석현  / 2013-07-27-11:19 삭제
상지도 지적했듯이

<사랑채><사랑방>으로 옮기는 것이

주인집과 별도 문간방 행랑(行廊)이나

별도의 사랑채[廊, 堂]등 꼭 맞는 글을 쓰지 않아

그냥 <집>으로 옮겨 본 거고

이 역시 정확한 것은 현장을 알 필요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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