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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약용-몽우일매-꿈속의 여인
작성자박형상 이메일[메일보내기] 작성일2013/07/11 16:02 조회수: 331

ㅡ정약용,꿈속의 여인,몽우일매(夢遇一媒)





정약용 48세,

강진 다산초당,1809년 11월6일경의 일이다.

아래의 詩를 썼다.

그 제목은 통칭 '몽우일매' 또는 '꿈속의 여인'으로 말해진다



[十一月六日 於 茶山東庵 淸齋 獨宿 

夢遇一姝 來而嬉之 

余亦情動 少頃辭而遣之 

贈以絶句 覺猶了了 詩曰]



 ㅡ십일월 육일, '다산의 동암 청재'에서 혼자 자는데,

꿈에 한 예쁘장한 여인이 나타나 추파를 던졌다. 

나 역시 마음이 동했지만 잠시 지내다가 

그를 보내면서 絶句 한 수를 주었는데,

그 꿈을 깨고 나서도 기억이 역력하였다.

詩는 이러하다



雪山深處一枝花

爭似緋桃護絳紗

此心已作金剛鐵

縱有風爐奈汝何 



 아주 간단하게 보이는 '7언 절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번역 내용은 꽤 엇갈리고 있다.

정약용에 관한 선입관이 그 번역을 좌우하고 만다.

바꾸어말하면, 정약용을 바라보는 관점이 역자의 가치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아래의 번역 사례들을 비교해보자.

나아가 그 작시 배경을 살펴보고서, 마지막에  필자의 의견을 보태본다.





ㅡ번역1, (한국고전번역원)



설산 깊은 곳에 아름다운 한 송이 꽃 

연분홍 복사꽃 비단에 싸였는가 

이내 마음 어쩌다가 금강철로 굳었거니 

네가 비록 풍로라도 녹일 수가 있다더냐



 ㅡ번역2,(고승제,1995,/ 김지용,2002)



설산 깊은 곳에 한 가지 꽃같은 여인

붉은 복숭아꽃보다 이쁘게 강사포 드리우고

이 마음 이미 금강무쇠처럼 굳었었는데

함부로 풍롯불처럼 '어찌 네가 녹이느냐' 



 

ㅡ번역3,(이은영)



눈 덮인 깊은 산 속에 꽃 한 송이

붉은 복숭아꽃 붉은 비단보다 아름답도다

내 마음은 이미 금강심이 되었으니

풍로가 있다한들 '그대가 어찌 녹이리'



 

ㅡ번역4,(김상홍,2010)



눈 덮인 산속 깊은 곳에 한 송이 꽃               

복숭아꽃과 붉은 비단처럼 아름다워라           

내 마음 이미 금강석과 쇠가 되었는데            

풍로가 있다한들 '어찌 내 마음 녹이리오' 



 

ㅡ번역5,(박무영,2002)



눈 쌓인 깊은 산에 한 가지 꽃이

어찌 붉은 깁 두른 복사꽃과 같으랴

이 마음이 이미 금강철이 되었으니

설령 풍로가 있다한들 '너를 어이하리'



 

ㅡ번역6,(정민,2011)



눈온 산 깊은 곳에 한가지 꽃이 피니

붉은 깁에 둘러쌓인 복사꽃보다 낫다

이 마음은 금강의 쇳덩이로 되었나니

풍로가 있다한들 '네가 나를 어이 하리'



 

 ㅡ번역7,(김종태,2012)

-복사꽃과 금강철



눈 덮인 깊은 산 속 한 송이 꽃이

어찌 붉은 비단에 싸인 복사꽃만 하리

내 마음 이미 금강철이 되었으니

풍로가 있다 한들 '너를 어이할까'



 

살펴본다.

언뜻 대동소이한 듯하면서도 그 뉘앙스 차이가 꽤 있다.

'일지화'와 '복사꽃'에 대한 의미 부여에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제2구,承句의 '爭似'를 문법적으로 살린 경우, 무시한 경우로 나뉘어진다.

'爭似, ~보다, 어찌~ 같으랴'의  풀이에 따라 그 해석이 엇갈리게 된다.

"A 爭似 B"는  "A가 B와 어찌 같으랴, A가 B보다 더 못하다"는 뜻이다.

'緋桃護絳紗'는 '붉은 깁(絳紗,강사) 두른, 붉은 복사꽃(緋桃)' 의미 정도가 합당하겠다. 



이하, 번역자들의 의견을 옮겨본다.

'번역1,한국고전번역원'은 그 번역에 관한 별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 해석의 합당성 여부는 별론으로 하되, 

그 기본 시각은 '정약용의 강한 지조'쪽에 비중을 두는 것 같다.



 

'번역2, 김지용'은 '정약용의 지조 도덕'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다산의 객회(客懷)와 춘정(春情)을 표현한 詩이다",

"드물게 보는 '다산의 私생활'의 변모이다"라 잘라 말한다.



 

'번역2, 고승제'는 좀 더 구체적이다. 

'약한 남자의 마음'을 말한다.

"...'강사(絳紗)포'란 원래 임금의 장옷인데, 여기서는 신선의 옷처럼 표현했다.

다산 정약용은 꿈에 본 그 여인을 생시처럼 쫓아가고 싶은 심정을 토로했다.

마음이 이미 금강처럼 굳었는데 그 여인에게 매혹되고 말았다.

그래서 함부로 풍로불처럼 어찌 나를 녹이느냐고 

약한 남자의 마음을 토로하고 말았다...."



 

'번역3,이은영'은 '강한 엄숙주의' 시각이다.

"...다산초당에서 홀로 자는데 꿈에 한 미녀가 나타나 나를 유혹했다. 

나도 감정이 동하였으나 잠시 후 사양하고 보내면서 이 시를 지어 그녀에게 주었다.

’ 꿈 속에서조차 그토록 반듯했으니 평소의 삶이 어땠을까? 

 자신에게 엄격한 후에라야 남에게도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간음한 여인을 심판하려는 군중을 향해 

‘죄 없는 자만이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던 예수의 말이 생각난다. 

목민심서가 그냥 나온 책이 아님을 알겠다......" (아래의 '번역4'와 유사하다)



 

'번역4,김상홍'은 '도덕적 완전주의' 관점이다.

'꿈 속에서도 지향한 도덕성'이란 제목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귀양지 다산초당에서 자는데, 꿈에 한 미인이 나타나 자신을 유혹하자, 

처음에는 마음의 동요가 있었으나, 詩 한 수를 지어주고 고이 돌려보냈다. 

꿈을 깨고 나서 미녀에게 써준 詩를 시집에 기록했다.

다산이 꿈속에서까지 미인의 유혹을 뿌리친 것은 

평상시의 내면세계가 '극기와 결백성, 도덕성'으로 항상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면세계에 잠재하고 있는 '도덕적 완전주의'를 꿈속에서도 지향했다. 

평상시의 삶과 꿈속의 세계는 일원적(一元的) 이었다. 

현실의 삶과 꿈속의 삶이 같았다. 표리(表裏)가 일치했다.

이와 같이 '도덕적 완전주의'를 추구한 삶과 철학이 있었기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542권 저서에서 개혁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번역6,정민'은 꽤 감성적인 해석이다. 

번역3,4의 도덕적 엄숙주의에서 시작한다.

"...꿈속 여인의 추파에 잠깐 흔들린 마음이 부끄러웠던지 크게 도리질을 했다,

'깊은 산 쌓인 눈 속에 네가 찾아왔구나,

붉은 복사꽃이 피었다한들 너에게 견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 마음은 금강으로 만든 쇠공이다,

풍로로 녹인다고 녹아 흐를 내가 아니다,저리 물러가라, 요망하다'

참 멋대가리 없는 詩다,하기야 여자를 모르고 산 세월이 8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마흔 여덟의 팔팔한 나이였다, 안쓰럽고 민망하다....."





'번역7,김종태'는 전혀 다른 시각이다.

그 부제부터 '복사꽃과 금강철'로 의역하였다.

복사꽃과 금강철의 힘겨루기로 받아들였다.

즉 1구의 '설산심처 일지화'는 2구의 '복사꽃'에 흡수되고 만다. 

'설산심처 일지화' 자체에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된다.





 ㅡ이하, 앞의 번역들을 검토해 본다.



요컨대, '미인,여인,꽃'과 '정약용'의 양자관계로 바라보는 입장만큼은 동일하다.

그러면서 '미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서로 다른 두 정약용'이 다투는 것으로 본다.



다수의 번역은 "도덕적 완전주의자, 고고한 선비 정약용"으로 본다.

번역2는  "흔들리는 남자, 인간 정약용"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우리들은 정약용을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약용은 어쨌거나 나중에 다산초당에서 '홍임 모'와 살게 되었다.

'홍임'이란 딸을 낳았다는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번역,3,4'가 강조하는 '엄숙주의,도덕주의'를 배신한, 선비의 이중성에 실망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 당대 사회적 현실에서는 그에게도 역시 자연스런 일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가?



 ㅡ필자 의견은 그렇다.



먼저 생각해 볼 부분 한가지.

강진 유배지에서 함께 살았다는 '홍임 모녀 후일담'에 관한 아픔 부분은 따로 생각해 보기로 하되,

그에 앞서 '정약용의 신화화, 우상화 현상'은 이제 경계하자는 쪽이다.

정약용은 '성인 聖人'이 아니다. 

내내 성실했고. 성실하려 노력했던, 현세적 인간 정약용이다.

어찌 미인에 유혹을 당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그런 꿈 한번 꾸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 꿈은 그 당시에 그가 처해 있는 개인적 현실의 또 다른 반영이었을 것이다.



중풍에 걸린 몸,

고향 돌아갈 날은 이제는 점점 무망해지고.

강진에서의 정착을 생각해볼 수도 있었을 것 아닌가?

'훌륭한 학자 정약용'이라지만 정작 그 자신의 여자 문제에는 한없이 단순했을 지도 모른다.



 

ㅡ앞 번역들을 다시 따져 살펴본다.

그 옮기는 뉘앙스가 서로 꽤 다르다.



첫째, '설산심처 일지화'를 어떻게 보아야하나?

앞서의 모든 번역들은 그 꽃이 어떤 꽃인지 따지지 않고 바로 '한송이 꽃'으로 직역을 하였다.

굳이 현실에서 찾아본다면 과연 어떤 꽃 정도가 될까?

당시 정약용의 강진 땅 현실에서 '설산심처 일지화'를 바로 찾기는 어렵겠다.

겨울철 雪山에 '한 가지에 핀, 한 송이 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터.



그래도 찾아본다면 강진 유배지에서는 그 주변의 '붉디붉은 동백(山茶) 한송이' 정도가 가까울 것.

기실 '一枝花 동백'은 분재나 꺾여진 상태로나 가능할 일이지만 '一樹花'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마침 정약용이 다른 詩에서 '山茶 一本','山茶一樹花' 란 표현을 한 적도 있다.

"담 모서리 山茶 한그루에 꽃이 피었네 / 牆角山茶一樹花" 

(만약 그런 '동백꽃'이 아니라면 겨울을 이겨낸 초봄의 '매화꽃' 정도일지 모른다.

관념적 차원을 강조하는 '매화 일지화'도 그 나름 해당될 가능성이 높겠다.)





 둘째,그 '설산심처의 꽃'은 왜 하필 '一枝花'인가?

앞서의 번역들은 정약용이 그 '몽우일매' 원시에 병서해둔 부분에 연결시켜 '美人'으로 보았다.

즉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런데 왜 그냥 '꽃'이라 하지않고 '一枝花'라는 한정적 詩語로 표현했던 것일까?

정약용은 "용사(用事)없는 詩는 詩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음풍농월'의 단순함은 詩가 아니라 했다)

그렇다면 '一枝花'란 詩語를 굳이 사용한 까닭이 따로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 삼국유사의 '거타지' 설화에 나오는 '一枝花'가 있다.



"진성여왕 때 왕의 계자(季子)인 아찬 양패(良貝)가 무리를 이끌고 당나라로 가는 도중에 

곡도(鵠島)에서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밤 양패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활을 잘 쏘는 사람 하나만 이 섬에 남겨두고 떠나면 순풍을 얻으리라'하였다. 

뽑힌 궁사 거타지가 홀로 섬에 남아 수심에 쌓여 있자, 

홀연히 한 노인이  말하기를, '매일 해뜰 때마다 하늘에서 한 중이 내려와 다라니(眞言)를 외며 

그때마다 자손들의 肝을 하나씩 빼먹고 오직 서해신의 부부와 딸 하나만을 남겨놓았으며 

내일 아침에도 다시 나타날 것이니 그때에는 활로 쏘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이튿날 아침 숨어서 기다리던 거타지가 활을 쏘아 중을 맞히니, 

중은 곧 늙은 여우로 변하여 땅에 떨어져 죽었다. 

노인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아달라고 부탁하여 딸을 '한 가지의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주고, 두 마리 용에게 명하여 거타지를 받들고 사신가는 배를 뒤쫓아가 

그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당나라에 도착하게 하였다.

다시 고국에 돌아오자 거타지는 '꽃 한가지'를 꺼내어 여자로 변하게 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즉 '오로지 하나의 소망, 일편단심을 품고 있는 여자'앞에서,

그 상대방은 '어쩔 수 없이 그 여자를 선택해야만 하'는, 그리하여 '정분(연분)을 맺는 여자'로 운명지어진, 

'一枝春心'의  '一枝花'를 정약용은 미리 암시한 것 아닐까?  

('일지화'에는 '가련한 여자, 연민이 가는 여자'라는 뜻도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莊子'의 '逍遙遊 篇'에 나오는 '一枝'가 있다.

"鷦鷯巢林 不過一枝" 



'一枝'는 중국의 寒山의 詩에도 나온다

언제나 저 뱁새를 생각하노니 '한 가지'만 있어도 몸 편하다네"

"常念焦瞭鳥 安身在一枝"

작은 뱁새에겐 한 가지(一枝)만 있으면 지족(知足)이다.

초의 선사의 一枝庵의 '一枝'가 바로 그런 '一枝'에서 유래한 것이다.



더 이상은 필요없다. 두 가지도 필요없다.

오로지 '나무 한 가지, 一枝'이면 안빈낙도에 충분하다는 것.



 셋째,3구의 '此心'은 누구의 마음인가?

3구에 나오는 '차심 금강철'은  '제3 관찰자'로서 정약용의 심사를 따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앞서의 일부 번역들도 '3구,차심 금강철'을 '1구,설산 일지화'와 서로 대비시켜 옮기고 있다.

(다만 번역7은 '복사꽃'과 '금강철'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 시를 쓴 '話者' 정약용, 그 자신의 심리를 두고 '금강철'에 해당한다고 전제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넷째,4구 結句의 '풍로'는 어떤 의미인가?

4구의 風爐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풍로가 있다는게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바로 연관되는 문제로  4구 말미의 '내여하'의 '너(汝)'는 누구를 말하는가?



앞서의 번역들은 바로 결구 부분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즉 '1구의 일지화'를 말하는가?, 

'2구의 복사꽃'을 말하는가? 



그 꿈속의 여인을 보는 시선이 갈라진다.

'일지화'로 보는 입장과 '복사꽃'으로 보는 입장으로 나뉜다.



번역1,네가 비록 풍로라도 (나를) 녹일 수가 있다더냐 

번역2,함부로 풍롯불처럼 어찌 네가 (나를)녹이느냐 



번역3,풍로가 있다한들 그대가 어찌 (나를) 녹이리

번역4,풍로가 있다한들 어찌 내 마음 녹이리오



번역5,설령 (나에게) 풍로가 있다한들 '너를 어이하리'

번역6,풍로가 있다한들 네가 나를 어이하리



번역7,풍로가 있다 한들 (내가) 너를 어이할까.



 필자의 입장은 '번역5(박무영)'를 지지한다.

-번역5,설령 풍로가 있다한들 '너를 어이하리'

"설령, 풍로가 나에게 있다한들, 결국에 '나, 금강철'이 '너,일지화'를 어떻게 하겠는가?"

다만 번역5도 다른 번역들처럼 '풍로가 있다한들'이라고만 바로 옮기고 있지만 

그 숨겨있는 은유적 의미는 '내가 마치 풍로처럼 바람을 피워본다한들'정도라 여겨진다.



 ('번역7'은 '번역5'와 표면적으로는 똑같은 문언으로 옮기고 있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번역5가 '일지화와 금강철'의 사연으로 파악하고 있는 반면에 

번역7은 그 부제를 '복사꽃과 금강철'로 해 놓은데서 '내여하'의 '너'를 '복사꽃'으로 보고 있다.)



 

ㅡ그런데 다시 문제가 남는다.

시와 현실'의 상호 괴리이다.

정약용이 '몽우일매' 詩를 쓰던 당시에는 '풍로를 이겨 낸 금강철'을 표방하였지만

그 후 실제 현실에서는, 즉 "강진 유배지에서 '홍임 모'를 만나 살았다"는데서 그 아이러니가 커진다. 

(만약 '홍임 모' 이야기가 실제의 사실이 아니었다면 그 해석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돌이켜보면, 起句에서 '일지화'를 내세움은 장차의 결말을 예견하여 의도적으로 계산한 詩語 선택 아닐까?

역설적으로 '자기 변명,자아 방어'의 소극적 변형 전략일지도 모른다.

'미인'을 만나고서 '심리적 유혹을 당하는 상태'에서 

'일단 그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지금은 완강히 부인하지만 종당에는 넘어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임박한 미래에 대한 예감, 강한 '자기 암시'를 부지부식간에 드러낸 것 아닐까?



 그리하여 그렇게 주춤거리는 內的 갈등이기에 

結句에서 "내여하,奈汝何"란 소극적 표현으로 나타난 것 아닐까? 



제4구, 결구를 살짝 뒤집어보면 "언젠가는 풍로를 돌려 바람을 피워 누군가를 따뜻하게 할 수 밖에 없고,

또는 녹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에는 '너, 일지화'의 뜻과 소망대로 될 수 밖에 없겠다"는 것 아닐까? 



 이렇게 에둘러 접근해 봄은 앞서 말한대로 현실에서는 "홍임 母"를 만나 살았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몽우일매' 詩의 배경은 "'홍임 모'를 만나 이미 그 마음이 크게 흔들리던 당시의 일"일지 모른다.

(얼마 전부터 '남당詞'를 포함하여 정약용과 '홍임 모'에 관한 이런저런 비극적 사연이 소개되고 있다.

'강진에서 살게된 여자와 그 사이에 낳은 딸을 정약용이 방치했다'는 혐의도 언급되기에 이르렀다)



 ㅡ이제 정리한다.



'몽우일매'에 관련하여 '번역5'의 시각에 동의한다.

어떤 해석을 따르게되든 그 부분 사정은 수긍되어야 한다.

"정약용이 부끄럼 없이 '몽우일매'라는 詩를 쓰고 남긴 것, 

그 당시 그 심경을 가감없이 드러낸 것,

또 그대로 남겨두어 공개한 것" 자체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 아니겠는가?



 때로 감추고 때로 드러내는, '인간 정약용'의 개인적 체취가 느껴질 때

그런 정약용이 나에겐 더 가깝고 위대하게 느껴진다.

일부 번역들은 정약용에 관한 선입관으로 인하여 그 문법적 접근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정약용의 우상화 신화화 현상은 경계되어야한다.



 평생 진지하고 성실했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몽우일매'를 꿈꾸었던 날은, 

어쩌면, 그 전날이나 그날 낮에 공재 윤두서, 해남 증조부 집을 다녀오거나

거기에 있는 '미인도' 그림 속의 '미인'을 만나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자 생각이 더 간절했을련지 모른다.



 아니면,마음도 지치고 몸은 병이 들어 오랜 유배살이의 어려움이 극에 달할 때,

중풍에 걸린 정약용을 지키며 그 옆에서 고이 수발해왔던, 

한 여자의 소망을 더 이상 뿌리치고 외면하기 어려운 시점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일지화'라면 나는 족하다.



그 여자는 '강진 매반가의 주모의 딸'이거나, 

강진 묵재(이학래 집)에서 만난 여자'이거나,

바닷가 산책길에서 마주친 '남당포 여자'일지도 모른다.



 요컨대, 꿈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한다.

詩, '몽우일매'는 지극히 인간적인 내용이다.



 ㅡ이제 번역8, 필자의 번역이다.



유배객 정약용이 아주 간명한 대비법을 적절하게 구사하였다고 나는 판단한다.

'설산심처 일지화'는 강진 유배지에서 만난 촌스러우나 소박한 시골 여자. 동백꽃일 수 있다.

'강포에 쌓인 복사화'는 서울 여자, 배운 여자, 양반집 규수 또는 붉고붉은 복사꽃이다.

(혹 멀리 있는 고향의 홍씨 부인일지도 모른다.)



나 금강철은 그 소박한 일지화와 그 화려한 복사꽃 사이에서 번민한다.

'시골 동백꽃'이 서울 복사꽃'보다 덜 하다, 

더 나을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있다. 



그래도 나에겐 '시골 일지화'가 더 낫다.

뱁새같은 내 한 몸을 그 '일지화'에 의지할 수 있다면 난 더 바랄 게 없다.

그런데 '금강철'을 다짐한 내 처지라서 당장 바로 너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록 내가 풍로처럼 바람을 피운다한들' '너 일지화'를 지금은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내일이면 모를 일이다.

'일지화'에 실린 의미 전달의 實效를 위하여 제1,2구의 순서를 바꾸어 옮겨 보았다.



 

어찌 붉은 비단에 쌓인 복사꽃만 하리요만         / 雪山深處一枝花

雪山 깊은 곳에 한가지 山茶 꽃이 피었네           / 爭似緋桃護絳紗

이내 마음 이미 금강철로 굳어있거니                / 此心已作金剛鐵

비록 풍로가 있다한들 너를 지금 어찌 하리요      / 縱有風爐奈汝何





-덧붙이는 한마디.

앞의 詩 '몽우일매'는 다산초당으로 옮겨온 후 1809년에 쓴 것이지만,

정약용이 1808년에 그 거처를 강진읍 묵재에서 다산 초당으로 옮겨오기 전. 

1807년경 '강진 묵재-제자 이학래의 집'에서 머물던 때도 그 번민이 있었을지 모른다.

 

'장다리 꽃'을 찾아오는 '나비'를 읊었다.

'장다리꽃'과 '나비'를 음양으로 풀이하였다.

추측컨대, 정약용은 그 무렵부터 여자문제로 고민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거처를 다산초당 쪽으로 옮겼을지도 모른다.



 

ㅡ장다리 꽃에 나비를 읊다........1807년 봄,강진 묵재, 이학래의 집 

[賦得 菜花蛺蝶]



사랑채 아래 세 두둑 장다리밭 / 舍下三畦菜

나무 의지해 울을 대충 쳐놨는데 / 疎籬傍樹開

보매, 꽃은 가만히 있으려 하건만 / 且看花欲靜

누가 부추겨 나비더러 찾아오게 했는지 / 誰起蝶先來

병든 날개는 꽁꽁 얼어붙었어도 / 病翅猶全凍

꽃 탐하는 마음은 그래도 안 식었나봐 / 芳心獨未灰

봄바람은 신의가 대단해서 / 春風大有信

언제든지 너희와 함께 돌아온단다 / 每與爾同回

덧글 ()

박형상  / 2013-07-11-16:08 삭제
ㅡ두 친구에게 감사드립니다.

ㅡ이번 동문회지, <무등의 빛>에 게재된 졸고입니다. 

한일섭 친구에게  감사드립니다.



ㅡ글 본문의 일부 해석에 있어서는 조석현 친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역시 감사드립니다.



ㅡ글 분량이 꽤나 길어 ,,그렇지않아도 세파에 시달릴 친구들에게 미안합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슬슬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ㅡ<꿈속의 여인>앞에서 번민하는,정약용이라는 남자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나웅인  / 2013-07-12-11:08 삭제
형상이 !

잘 읽었네.

나에게도 일지화가 한 번이라도 나타나까?

너무 나이들어 지젠 그냥 웃고 살아야것제.
박형상  / 2013-07-13-18:53 삭제
ㅡ나원장, 반갑네..잘 지내제?

ㅡ뭘, 아직도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는데!...기회는 늘 있겟제!....
송기병  / 2013-07-14-10:48 삭제
박 변!

넘 길당께는... ㅎㅎ
박형상  / 2013-07-14-13:30 삭제
《Re》송기병 님 ,

ㅡ열대야 장마비에 잠이 쉽게 안 올 때..

 한번 일거보시게나.....숙면에 도움이 될 것 같아......나도 그런다네...
송기병  / 2013-07-14-14:18 삭제
《Re》박형상 님 ,

알겠네, 명심하제...
조석현  / 2013-07-15-17:43 삭제
장다리 홍(蕻)이나 옹(蓊)으로 특정하지 않는,

일반 채소를 뜻하는 채(菜)를 장다리 해석이 가능한 지?

물론 봄 채소의 꽃이 무,배추의 꽃인 장다리꽃일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장다리는 이름만 들어보아도 뭐가 기인~ 것 같고

장다리에는 꽃이 피고 이윽고 씨가 열리는데

씨를 털어내면 공다리요, 씨가 달린 채 마르면 댕가리라는데

우리말 참 재밌죠. 느낌도 팍팍 오고



무장다리 어린 대는 뭇종이라 하고

상추 꽃줄기는 동, 파,마늘은 종

(종은 마늘쫑으로 쉽게 알 수 있죠)



또 상추줄기는 부룻동이라고 한다는데

부루가 상추의 다른 이름이라합니다.
조석현  / 2013-07-15-18:26 삭제
사극 드라마의 단골 주제 장희빈~

이런 이야기도 들어보았을 법

(인터넷에서 인용해 봅니다)



장다리는 한철이나 미나리는 사철이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다.

메꽃 같은 우리딸이 시집 삼년 살더니

미나리꽃이 다 피었네.'



이 가사의 뜻을 풀이하자면 이렇습니다. 



여기서 장다리는 장희빈을 뜻하고 미나리는 인현왕후를 뜻합니다. 장다리는 키가 크지만 한 철만 살아 있으므로 얼마 못가 시들게 되고, 미나리는 사철 내내 살아 있고 얼음장 밑에서도 살아남으므로 한결같이 진실된 마음이 있어 생명력이 끈질기다는 것입니다. 고로 이 가사의 뜻은 '장희빈은 얼마 못가 왕후 자리에서 쫓겨날 것이고 다시 인현왕후가 왕후자리에 복귀할 것이다'라는 거죠



백성들의 바램이 맞아떨어졌는지 6년 후 인현왕후는 다시 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몸이 약해져 그만 8년 후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한편, 장희빈의 인생도 불운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왕후 자리에서 쫓겨난 장희빈은 하도 분해서 인현왕후를 죽이기 위해 궁궐에서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굿을 벌이고 인현왕후의 얼굴을 그려 그곳에다 화살을 쏘는 등 모든 저주를 다했습니다. 그러나 인현왕후가 죽은 뒤 이사실이 탄로나고 그만 장희빈 역시 사약을 먹고 죽게 되었습니다.
조석현  / 2013-07-15-20:16 삭제
씨도리 배추          - 이문구



나를 모르시겠지요.

겉대나 속대나 싸잡아서

배추통만 싹뚝 도려내어

겨우 밑동만 남은

씨도리 배추,

두었다가 씨앗을 받으려고

내버려 둔

배추꼬랑이이예요.

내가 겨우내 꽁꽁 언 채

눈으로 목을 축이며

밭에서 견디는 것은

내년 봄에

노랑 물감같은

장다리꽃을 피우기 위해

왜라니요,

꽃을 피우지 못하면

살았다고 할 것이 없잖아요.
박형상  / 2013-07-15-23:39 삭제
《Re》조석현 님 ,

ㅡ옮기는데에 적합한 말이 궁하기도 하다네....



ㅡ이문구의 '씨도리 배추'..퍽 재미있는 시이군....

혹 소설가 이문구와 동명이인?
조석현  / 2013-07-16-09:07 삭제
《Re》박형상 님 ,

- 2003.2 타계한 소설가 이문구 유고 동시집,

  우리 자연과 옛 풍습을 노래한 66편의 동시집,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 중,



-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손자 손녀들에게

   이런 얘기만은 꼭 들려 주고 싶어서"

   썼다는 동시 중
김원배  / 2013-07-21-15:16 삭제
너무 길어서 읽지 않을려다가 모처럼 시간을 내서 일독해 보았네.

여기서는 꿈속의 여인의 유혹일지라도, 시골의 일지화가 서울의 복사꽃보다 못할 망정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세속적인 욕망을 그린 것 같다는

박변의 해석에 무게중심이 쏠리네. 문자적인 해석보다는 시를 쓴 역사적인 배경이나 시간,환경을 

대입해서 해석하면 쉽게 답이 나오는 것 같네만 그 역시도 해석이 다를 수가 있어서.....어렵네.

다산 선생의 전생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그 어느 해, 어느 날의 일탈이라고 하면 모를까......
박형상  / 2013-07-21-20:55 삭제
ㅡ읽어주어 고맙네..

정약용은 무려 2500수 정도의 시를 남겨두고있는데...

1822년 회갑 이전의 시들은 대체적으로 시간적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네...

또 어떤 경우는 해당시에 날짜, 장소를 부기해 둔 경우도 있고...



ㅡ이번 <몽우일매, 꿈속의 여인>도..1809년 11월 6일, 강진 다산초당에서 써진 것.

1801년11월에 강진에 유배와 이제 유배 10년 째에 들어가는 때이고...



ㅡ문제는 정약용 선생은 도덕적으로 너무 훌륭하셔서 그런 여자 생각은 전혀 안 햇을 것이라는 식의 일방적 해석이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는 점...

.....나는 그런 도덕주의 해석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이고...



ㅡ구체적인 사건과 상황적 배경을 안다면 그런 해석 논란이 아예 생기지 않앗을 것..

그런 배경 사실이 모호한 상태에서 ..나름대로 합리적 추론을 하는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문자적 문법적 해석도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글자 한자 잘못 이해하거나 옮기기고만데서... 그만 전혀 엉뚱한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는 경우도 드믈지 않고...



..여하튼 꼼꼼히 읽어주어 다시금 감사드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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