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정약용과 '良友樂(1)'
-먼저 '친구,벗'을 표현한 정약용의 시어들을 살펴보자.
千載友(천년우),佳友,美友,熱友, 豪俠友, 尙友,須友, 契心友.平生友..
曹朋, 親朋, 舊朋, 友朋,,朋知,,.......金蘭...
知音,知己,相知,........同心,,..故人....
絶絃,.......晩交如膠漆.
그리고 拙友와 朋淫,
'친구를 파는 賣友'도 있었다.
'良友樂'
서울에 올라온 정약용(1762~1836)은 '良友樂'을 말하였다.
좋은 친구와 사귀는 즐거움이다.
-오래 전에 서울로 오려 했던건 / 久欲就京城
살림집 마련하자 한 게 아니니 / 非爲居室營
좋은 벗의 즐거움이 있지 않으면 / 不有良友樂
그 어찌 깊은 정을 풀 수 있으리 / 何以暢幽情
(-임인년 중춘, 체천정사, 1782년,2월)
'親朋'이라는 말도 사용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친구들은 변하거나 떠나버렸다.
또한 그의 강진 유배생활이 길어지면서 그 친구들은 멀어져 갔다.
15인 엘리트로 구성된 죽란시사 모임도 있었지만,
"臨賀에 변치 않는 친구는 '이주신과 윤무구' 두 사람 뿐이다"고 한탄하였다.
난초와 쑥을 구별하지 못햇다고 후회하였다.
강진 유배지에서 契心友로 '보리자 윤서유'
그리고 십년 아래 '혜장 스님'이 있었다.
1818년,18년 오랜 유배를 마치고 돌아왔다.
무구(윤지눌,1762~1815)'는 이미 떠나 버렸고,
'남고(윤지범,1752~1821)''주신(이유수,1758~1822)는 곧 바로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이제는 노년의 친구들 뿐.
다시 '良友樂'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준 情깊은 고향 친구들,
초천의 주변 마을에 사는 친구들이 있었다.
백운봉을 함께 오르고 용문사에 함께 갔다.
겨울이면 강 건너 마을에서 꽁꽁 언 한강 얼음위를 걸어 정약용을 찾아왓다.
그리고 뜻과 말이 통하던 친구들.
강진 초당으로 먼저 찾아와주어 알게 되었던, 문산 이재의(1772~1839)
유배 전부터 알고 지내온 평생 친구, 송옹(외심) 윤영희(1761~1828)
(정약용은 그가 죽자 '絶絃'을 말하였다)
강 건너편에 살고 있던 학문과 토론의 친구, 석천 신작(1760~1828)
인근 양근에 살고있던 여씨 형제들, 여동근(1768~ ?), 여동식(1774~1829)
이하, '벗'에 관련된 정약용 시문을 모아본다.
ㅡ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계
옛날 두공부(杜工部, 두보)가 이곳저곳으로 떠돌며 곤궁하게 지낼 때에,
옛 친구들을 생각하여 팔애시(八哀詩)를 지어 그 쓰라리고 슬프며 감개(感慨)한 정을 읊었는데,
천년 뒤에 그 시를 읽어보아도 읽는 이에게 처량하고 쓰라림을 일으키게 해준다.
친구들 중에는 명성과 지위가 현달하고 재예(才藝)가 뛰어난 사람도 있었는데
모두 이 시에 힘입어 영구히 전해지게 되어 역사책에 기록되고
종정(鍾鼎)에 새겨진 것보다 도리어 나은 점이 있으니
문사(文詞)를 소홀하게 여길 수 없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杜工部야말로 친구를 배반하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
나는 유락(流落)된 이래로 친교(親交)가 모두 끊어지고 사람들이 이미 헌신짝처럼 버렸으니
그들에 대한 나의 情도 그로 인하여 역시 소원해져서 날로 멀어지고 날로 잊혀져 간다.
다만 풍상(風霜) 이전에 따라 다니면서 즐겁게 노닐던 흔적이 역력하여
눈에 선하고 반짝반짝 마음에 떠오르곤 한다.
늘 그때 했던 일을 주워 모으고 그때 했던 말들을 기록하여
그때의 풍채(風采)와 기상(氣像)을 방불하게나마 상상해 보고 싶지만,
시상(詩想)이 막혀 마음속에서만 뱅뱅거릴 뿐이었다.
금년 여름에 다산에서 病을 고치느라 글 쓰는 일이 뜸하기에
비단 몇 폭을 찢어내어 손이 가는 대로 두서없이 기록했는데,
뒷날 시상(詩想)이 확 트이게 되면 이것을 근거하여 시를 지어서 두보(杜甫)를 모방하려 한다.
그것이 비록 영구히 전해지게 되리라고는 감히 바랄 수 없지마는
옛 친구를 생각하며 혼자서 그 깊은 情을 펼치는 데 있어서는 '어진 이'나 '어리석은 이'의 구별이 없을 것이다.
마침 학포(學圃)가 곁에 있기에 그에게 주어 돌아가서 제 兄에게 주게 하였다.
ㅡ의란. 벗을 찬미하는 뜻이다........1795년 7월26일 이전
[猗蘭 美友人也]
쭉쭉 뻗은 난초 줄기 / 蘭兮猗兮
저 산비탈 자라는데 / 生彼中陂
아름답다 우리 벗 / 友兮洵美
德을 지켜 반듯하다 / 秉德不頗
딴 벗 어찌 없으랴만 / 豈無他好
그대 생각 많고말고 / 念子實多
쭉쭉 뻗은 난초 줄기 / 蘭兮猗兮
저 언덕에 자라는데 / 生彼中丘
지금 세상 보통 사람 / 凡今之人
지조 너무 빨리 변해 / 不其疾渝
그대 생각 잊지 못해 / 念子不忘
이내 가슴 안절부절 / 中心是猶
쭉쭉 뻗은 난초 줄기 / 蘭兮猗兮
저 쑥밭에 자라는데 / 生彼蓬蒿
메마르고 거친 포기 / 萎兮蓊兮
어느 누가 손질할꼬 / 誰其薅兮
그대 생각 잊지 못해 / 念子不忘
이내 가슴 애탄다오 / 中心是勞
ㅡ의란 3장 장 6구(猗蘭三章章六句)
[의란조(猗蘭操) : 공자가 지은 금곡(琴曲)의 이름. 공자가 위(衛) 나라로부터 노(魯) 나라에 돌아와
향란(香蘭)을 보고는 스스로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겨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ㅡ고시[古詩] 27수.............1801년3월 10일 이후
-제14수
벗이여 달 아래서 마시려거든 / 友欲月下飮
오늘밤 달을 놓치지 말게나 / 勿放今夜月
만약에 내일로 미룬다면 / 若復待來日
바다에서 구름이 일 것이며 / 浮雲起溟渤
또 내일로 더 미룬다면 / 若復待來日
둥근달이 이미 이지러질 거야 / 圓光已虧缺
ㅡ자신을 비웃음 ........1801년3월 이후, 40세, 장기
[自笑]
-제4수
浮世에 사귈 사람 몇이나 된다던가 / 浮世論交問幾人
朝市 사람 잘못 알고 情眞으로 대해서야 / 枉將朝市作情眞
국화 그림자 아래 詩 잘한다는 이름 높고 / 菊花影下詩名重
단풍나무 壇 속에선 연회가 잦은 법이지 / 楓樹壇中讌會頻
천리마 꼬리에 붙은 파리는 좋게 보고 / 驥展好看蠅附尾
개미가 기어올라도 龍은 그냥 둬둔다네 / 龍顚不禁蟻侵鱗
세상의 온갖 꼴들 웃음이 절로 나와 / 紛綸物態成孤笑
東華의 먼지 속에다 묻어두고 말자꾸나 / 一任東華暗軟塵
ㅡ 알지 못함........1801년 6월17일 이후
[不識]
난초를 모르고 쑥이 좋다 하다니 / 不識蘭爲艾
아! 어쩌리 楚나라 대부여 / 嗟嗟楚大夫
세상 인심 다 빤한 것인데 / 世情都已見
지난 일들 왜 그리 어리석었던가 / 往事一何愚
'설관'도 조시(朝市)와 다를 바 없고 / 薛館元朝市
'양원' 역시 세력 찾아 모이던 곳 / 梁園亦勢途
예부터 있어온 호협한 친구들 / 古來豪俠友
오활한 선비는 그 축에 못 들지 / 未必在迂儒 (한국고전번역원)
[난초를 …… 대부여 : 세상이 인재를 몰라줌. 초(楚)의 삼려 대부(三閭大夫) 굴원(屈原)이 쓴 《이소경(離騷經)》에,
“집집마다 쑥을 허리춤에 가득 차고 다니면서 유란(幽蘭)은 찰 것이 못 된다고 한다네.
[戶服艾以盈腰兮 謂幽蘭其不可佩]" 하였음.
[설관 : 설(薛) 나라 객관(客館). 전하여 규모가 가장 작은 나라의 객관.
(정민 교수 -전국시대의 '설공 맹상군의 객관'으로 본다)
[양원 : 한(漢) 나라 양 효왕(梁孝王)의 원유(苑囿). 당시 많은 빈객(賓客)들이 모이던 곳.
ㅡ'보리자'에게 주다................1803년,42세, 늦은 봄, 강진
[贈 甫里子]
좋은 풍속 오래 전에 없어지고 / 熙俗久已敝
본심도 모두 다 잊어버렸다네 / 斲雕喪其眞
먼 시골도 그는 마찬가지여서 / 遐荒亦復然
경박하고 잘 속이고 가까이할 자 적은데 / 恌詐鮮可親
온화하고 신실한 보리자는 / 恂恂甫里子
과단성 있고 충신한 사람이야 / 果哉忠信人
여러 밤을 새며 만나 얘기해도 / 晤言屢永夕
담박하고 순후함 그것이었네 / 淡泊著其淳
저 악착스런 무리들은 / 譚彼齷齪者
질투가 입술에까지 나타나지 / 憤嫉形牙脣
기나긴 40년 세월 / 悠悠四十載
이 세상 먼지 다 마시고 살면서 / 吸盡東華塵
생각을 못했네 마음 맞는 친구가 / 不謂契心友
바로 남쪽 바닷가에 있을 줄은 / 乃在南海濱
마음에 있는 것 다 털어놓고 / 傾蓋便輸寫
묵은 친구 새 친구가 따로 있다던가 / 相知無舊新
龍門이 깊고도 넓어서 / 龍門鬱㟹嶆
일민이 살기에 알맞은 곳이니 / 棲息宜逸民
우리가 함께 숨어살며 / 逝成偕隱志
늙어 죽도록 서로 이웃하세 / 終老接比隣
<주> '보리자'는 나중에 사돈을 맺는 '개보 윤서유'이다.
ㅡ장상사(長相思) ..............1806년 3월18일 이후
-벗을 생각하며
아침에 발을 걷어보고 / 朝褰簾
저녁에도 발을 걷어보고 / 暮褰簾
부드러운 봄구름이 푸른 맷돌 가지고 있어 / 冉冉春雲礙綠櫩
뜰에 풀만 날로 자라고 있네 / 日令庭草添
복사꽃도 뾰족 / 桃花尖
살구꽃도 뾰족 / 杏花尖
섬섬한 새벽비에 꽃망울이 터졌으니 / 舀破芳心曉雨纖
아희더러 가 만지지 말래야지 / 不敎兒去拈
[장상사(長相思) : 옛 사패 이름. 36자 또는 1백 자 또는 103자로 되어 있음. 《詞律 卷2》
ㅡ홀만(忽漫).................1809년 2월15일 이후
홀연히 꽃을 보니 눈물이 수건 적시네 / 忽漫看花淚滿巾
10년 전에만 해도 조정에 있던 신하였는데 / 十年前是內朝臣
봄 얼음에 호랑이 꼬리 마음 놓을 곳이 없고 / 春氷虎尾無安土
비바람에 닭이 울면 먼 곳 사람 그립다네 / 風雨鷄鳴憶遠人
知己 만나려면 단지(秪) 泉下에나 가야 있고 / 知己秪應泉下有
꿈이면 자주자주 집 찾아 돌아간다네 / 還家猶向夢中頻
벽오동 그늘 아래 틈만 나면 기대 누워 / 碧梧陰下頻婆側
주고받던 옛 얘기를 호젓이 더듬는다네 / 記把張陳話宿塵
ㅡ소릉(少陵)이 언젠가 말하기를 “어느 간사한 무리가 나를 사가려면 천 냥은 걸 것이네.”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그럼 아무는 팔려면 오백 냥은 받을 수 있을까?” 하고서, 서로 쳐다보고 껄걸 웃었다
ㅡ봄날 백련사에 가 놀다........1809년 2월15일 이후
[春日 游 白蓮寺]
구름조각이 닦아냈는지 바다하늘 활짝 맑고 / 片片晴雲拭瘴天
냉이밭에 나비들도 하얗게 훨훨 나는데 / 薺田蝴蝶白翩翩
우연히 집 뒤의 나무꾼 길을 따라 / 偶從屋後樵蘇路
드디어 들 머리 보리밭을 지나왔네 / 遂過原頭穬麥田
바다끝에서 봄 만나니 나도 이제 늙나보다 / 窮海逢春知老至
외진 마을 벗이 없어 중이 좋은 걸 알았다네 / 荒村無友覺僧賢
때로 먼 산 바라보던 '도연명' 생각이 나서 / 且尋陶令流觀意
한두 편 山經을 놓고 중과 함께 얘기했네 / 與說山經一二篇
ㅡ다시 백련사에서 놀다...........1809년 2월15일 이후
[再游 白蓮寺]
지팡이 끝에 딸그락딱딱 소리 내는 돌무더기 / 筇枝鏗戛石叢叢
오솔길 가로질러 소매 가득 부는 바람 / 徑路斜吹滿袖風
꾸부정한 물가 샘은 홈대 속을 흘러내리고 / 曲碕泉出連筒內
어지러운 대밭 속으로 小院의 문이 났네 / 小院門開亂竹中
수저에 감긴 물파래 푸르러서 그냥 좋고 / 水髮繞匙憐滑緣
장막에 비친 동백꽃 아직 몇 송이 남았어라 / 山茶照帳惜殘紅
너희들은 벗이 있어 참으로 부럽구나 / 汝曹有友眞堪羨
易東을 묻는 사람 지금은 세상에 없단다 / 今世無人問易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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