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말만 들어보아도 즐거워 진다. 그 중에서 정월 대보름은 더 그렇다. 새로운 희망이 달과 함께 뜨는 듯. 그 추운 사이에도 며칠 따스하다. 이틀 전은 입춘이었다. 입춘이니 동장군이 잠시 양보를 한 것인가. 그런 지도 모르겠다. 거짓말처럼 입춘 딱 그 날부터 푹했으니. '그 곳'에서 점심을 먹는 그 날 마침 보름. 손님 한 명이 "입춘대길" 인사를 하면서 들어온다. 오랫만에 들어보는 소리. 어릴 적 아버님은 대문짝에 여덟 팔(八)로 그렇게 써 붙이시곤 했다. 아버님이 계셨더라면 분명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이렇게 경파(炅坡)서실에서 그렇게 붓글씨를 정성모아 쓰셨을 것이다.
어제는 보름 장을 보러갔다. 부럼으로 땅콩을 조금 산다. 살 것도 별로 없다. 스님이 정성껏 땄다는 잣은 선물로 받았고 호두는 잘 안 먹는다면서 아주 짜잔한 땅콩만 샀다. 작황이 매우 나빴나보다. 정말 "땅콩"처럼 작다. 그런데 값은 작년보다 70~80%가 올랐다한다. 작아도 귀하신 몸이다. 집에 와서 까 먹어보니 맛은 좋다. 대추씨보다 더 작게 말라 비틀어 진 것이 더 맛이 좋다. 네 몸은 그리 그렇게 쪼그라 들었어도 그 깊은 맛은 더해졌나 보다. 참 몸이 문제가 아니다. 그 정신이다. 너 땅꽁만 봐도.
아내는 몇 시간 째 탐방댄다. 보름 준비다. 누가 보름을 쇤다고 '나물'을 준비하고 있다. 옆에서 짐짓 거들었다. 앞으론 보름 준비하지 맙시다. 누가 보름을 쇤다고. 그것도 다 일이 끝나간 다음에사 그렇게 내밷었다. 하나도 거들어 주지도 않으면서. 짐짓 미안해 던지는 말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진실이 담기지 않는 말도 아니다. 이제 보름을 챙기는 이도 없으니 우리가 그냥 손 놓으면 그만이다. 아이들은 발렌타인 데이, 블랙 데이, 빼빼로 데이 하면서 국적 불문의 이상한 날이나 챙기지 보름에 대한 의식 자체도 별로 없다. 이제 보름에는 보름달만 뜰려나 보다. 이상하게도 올 보름은 정말 보름 나물 실종이다.
괜히 회사에서 나물을 가져왔나? 나물을 갖다주기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처음이다. 보름나물을 준 것도 처음인데. 아내는 좋아하는 눈치지만. 하기에 그런 나물 하나하나 하기 싫거나 할 수 없다면 우리도 너무 늙어 버린 것이겠지만. 나물은 요리가 참 더디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손도 많이 간다. 도라지는 물에 담그었다가 그것도 모자라 소금으로 박박 문지른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은 손이 잘 안 가는데 쓴 맛이 조금이라도 남게 해서는 안된다. 제삿상에 올리는 것처럼 도라지도 데쳐 간간하게 무친다. 이 번엔 도라지가 제 맛이다. 나물에 뿌리 씹는 맛이 있어야지. 그게 도라지다. 도라지는 더덕, 인삼 대신이다.
고사리는? 고사리 나물은 잘 손이 가지 않는다. 그냥 무치면 늘 그렇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입맛의 편견이겠지만. 고사리는 병어찜이든 붕어찜이든 해어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육개장에도 제 맛이다. 우리 선조들이 참 좋아했던 나물 중의 하나가 고사리인데. 그런데 시대 흐름인가. 나물하면 고사리였는데. 이제 그 선두 자리를 도라지에 넘겨 두고 뒤로 뒤로 쳐진다. 일찍이 고사리는 은둔의 상징이었는데. 먹거리 자체도 점점 사라져 가려나.
실은 보름에 제일 맛 있는 건 토란대다. 이번 보름 나물 중에서도 내 맛에는 네가 일등이다. 들깨와 어울리면 제 맛이다. 너는 늘 제삿상 세째 줄의 주인이었다. 특히 외탕으로 혼자 한 줄을 다 차지하고 떠억 버티고 서 있는 제삿상을 보면 대단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토란대 나물의 진한 맛과 간질간질한 토란탕의 맛은 더 비교할 상대가 없다. 역시 독을 잘 다스리면 기막힌 맛이 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나물 중에 취나물이 있다. 그 중에서도 언젠가 수덕사 놀러가서 절 입구의 한 할머머니에게서 산 생취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정말 재배하지 않는 산취였나보다. 향이 무척 강했다. 산에서 어렵게 힘들게 자란 나물은 향이 강하다. 갖은 고난을 겪고 난 사람에게서 인간의 향이 짙게 배이듯. 재배 취나 건취에도 삶으면 다른 나물보다 고유의 취향기가 있어 좋다. 그런데 취의 소비는 미미하다. 아직 취가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음이다. 분명 고사리의 대를 이을 재목이 분명하건만.....
보름엔 묵나물을 모아모아 다 처분했다. 우리 선조들은. 그리고 남은 나물은 양푼에 푹푹 넣고 고추장에 쓰윽쓰윽 비벼 먹으면 일품이다. 비빔밥은 특이한 일미라 모다 칭찬한다. 그러나 나는 늘 비빔밥 보다는 나물 하나하나 맛을 즐기고 싶다. 실제로 비빔밥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다. 비빔밥은 정말 개성이 다 사라지고 마는가? 어느 비빔밥도 그 맛이 그 맛이다. 거기에 참기름이라도 넣어 버리면 딱 질색이다. 참기름. 이 놈은 참 묘한 놈. 모든 음식맛을 쫒아 낸다. 자기 혼자 잘 났단다. 혼자 고소하다 큰 소리만 치고 있다. 그런 네가 나는 정말 싫다. 너 존재만이 최고이지 아니지 않는가. 네가 나타나면 그 은미한 맛들은 어디로인가 가 버리고 없다. 다 그게 네가 한 일이 아닌가? 동네 상권을 다 잡아 먹은 괴물 SSM인가? 일미가 좋다지만 나는 나물 나물마다의 고유한 맛과 질감을 잃는 것이 더 안타깝다. 획일화되는 세상보다 다양한 모습이 보기 좋다. 한 빛보다 여러가지 아름다운 빛이 어울리는 것이 멋있어 보인다. 어떤 꽃이든 잡초든 다 그렇게 빛나는 존재다. 나물 반찬 하나하나는 자유 민주주의다. 비빔밥은 일인 독재국가다.
참 우리나라는 '하나' 보다는 기본 '셋'이다. 죽어도 짝수는 없다. 1.3.5.7.9.... 나물도 기본이 삼색 나물 아닌가? 도라지,고사리,시금치면 흰색,갈색,초록색이다. 빨노파 삼원색과 비슷하다. 빛의 삼원색은 빨,노,녹이다.고사리가 붉은 빛, 도라지가 노란 빛, 시금치가 초록빛을 말한다면 삼색나물은 빛의 으뜸이다. 초록색의 시금치가 없다면 건나물인 무시래기로 초록빛을 내야 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음과 양으로 이분법을 쓰지 않았어. 거기에 이를 중재하는 주인으로 중(中)을 중시했어. 그게 천지인의 우주에서 인간 곧 사람이지. 색으로는 노란색. 양의 붉은색과 음의 초록색을 조화시키는 존재. 나물로 치면 도라지네.도(道)을 알아라고 "도라지" . 인간들에게 깨달아라 큰 소리를 치고 있네. 도라지가. 중도(中道)의 '너의 길'(사람의 길)을 가며 하늘과 땅을 이롭게 하라고, 널리 사람에게 이롭게 하라고. 홍익하는 인간이 되라고.
보름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 중엔 찰밥. 이 질기고 찰진 기름기 번지르한 네 몸. 참 부자구나. 가난한 뱃 속에 너는 얼마나 든든한 녀석이었냐? 내 생일은 마침 보름 다음 날. 이름하여 기망(旣望). 내 어릴 적엔 보름을 씩씩하게 쇴으니. 늘 다음날 내 생일엔 먹을 게 풍부했다. 글고 찰밥은 절대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찰밥이 다 떨어질 때까지 끼니 때마다 찰밥으로 때웠다. 찰밥은 파싹 마른 김으로 둘둘 말아 한 주먹씩 어머니 몰래 먹은 맛이 최고다. 한 번 먹고 돌아 다니다 다시 찜 솥 주위에서 서성인다. 얼른 뚜껑을 열고 한 줌 퍼서 먹으면 그 맛이 최고다. 팥물을 많이 적시면 그 빛은 어찌 그리 고울까? 짙은 화장을 한 섹시한 색시가 된다. 팥물이 적은 것은 발그레 수줍은 새악시 볼이고.윤기어린 반들반들한 통통한 볼. 참 여름진 보름의 부잣집 처자의 탐스럽고 보드란 볼이다.
나물은 못하게 해도 찰밥만은 양보 못할 것 같다. 내일은 내 생일이니 그 정도 특권은 있을 것 같다. 나물을 하기 귀찮아 보름을 모른 척 보내려는 젊은 새댁. 아마도 친환경 나물회사 웰팜넷이 그냥 놔 두지는 않겠지. 삼색나물반찬세트를 사서 끓는 물에 3분만 넣으니 맛잇는 보름나물 요리가 식탁에서 반긴다. 아직 찰밥이 떨어지지는 않았지? 그래 정월 대보름 다음날 나의 지천명에서 이순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의 내 생일. 오늘 기망 내 생일의 보름달이 어제 보름날보다 더 둥글단다. 밝단다.지상에선 쥐불놀이의 깡통불이 맴돌고 달집 태우는 불길이 밝단다. 푸성귀가 나물이 점점 맛있어지니 세월이 가고 있나? 찰밥의 윤기가 점점 사라져 말라가는 얼굴. 그러나 이름만 들어도 윤기가 돌 것 같은 네 이름은 정월 대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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