燈下寫懷 贈輔之
輔之見烏次 分派自吾宗
譜系誰云遠 情懷頗自濃
身閑在田野 氣朴到羲農
笑語時相對 愁心或可悰
-烏次長興號
(졸역)曺輔之를 장흥 땅에서 보나니, 그 분파는 우리 집안에서 나왔네.
조상 계보는 비록 멀다해도, 그 정회만큼은 자못 깊고 진하다네
몸은 한가히 田野에 있다지만, 氣朴함이야 복희신농 세상과 같다네
우스개 소리로 때 맞춰 상대하니,愁心이 혹 즐거움이 되네그려
月夕對曺輔之 寫懷
自笑男兒事 東西未可期
冠山曾不到 吾子거能知.....거 = '言+巨' /관산 = 장흥
今夜庭前話 他年何處思
堪嗟人與地 去去每相離
(졸역) 스스로 우스워라 대장부 일, 동서를 기약하지 못한다네
장흥땅에 이전에 온 것 아닌데, 내 어찌 그대를 알았겠는가.
오늘밤은 뜰앞에서 이야기를 하나, 다른 해엔 어느 곳을 생각해야하나
안타까와라 땅에 묶인 몸, 가고 갈수록 매번 이별을 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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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는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으니 망기당 조한보가 아닌 조세보로 보는 것이네
燈下寫懷 贈輔之
輔之見烏次 分派自吾宗
譜系誰云遠 情懷頗自濃
身閑在田野 氣朴到羲農
笑語時相對 愁心或可悰
-烏次長興號
등불 아래서 생각을 토로하여 조세보에게 드림
우리 집안에서 (장흥)분파를 세보는 어찌 다음이라 보나?
계보를 누가 멀다 하리? 정회 자못 이리도 깊은 걸
몸은 한가로이 초야에 있어도 순박함이 복희신농일세
(세보의 이야기를)우스개소리로 아나니 근심도 어떤 경우엔 즐기리
- 어찌 (신씨의)장흥 別號를 다음이라 하는가?
月夕對曺輔之 寫懷
自笑男兒事 東西未可期
冠山曾不到 吾子거能知.....거 = '言+巨'
今夜庭前話 他年何處思
堪嗟人與地 去去每相離
달밤에 조세보의 생각 토로에 대하여
동서를 기약 못하니 남아의 일 스스로 웃네
관산에 일찌기 오지 않았으면 내 어찌 (인생무상을) 알았으리?
오늘밤 뜰앞에 대화, 다음엔 어느 곳에서 생각하리?
아! 사람과 땅 어찌 감당하리? 가고가고 늘 서로 나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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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당시의 輔자 이름을 보면 지난번 망기당 조한보 이외에
조변안의 장자 曺碩輔, 4자 曺時輔와 2자 曺世보가 있습니다.
조세보는 자는 德仁,세조의 단종 왕위찬탈에 벼슬을 버리고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정재공 조상치의 3자 조변안의 2자입니다.
9세에 달으로 보고 시를 지으니
밝은 달은 하늘 가운데[天心]에 떠있고
뜬 구름 은하수를 지나간다
잔잔한 바람 한 밤에 이니
이 시간이 한 해의 최고로다
조세보는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로 유학하였고
점필재가 재주와 학문을 매우 칭찬하였다합니다.
1497년(연산군3) 장흥고부사(長興庫副使)가 되었는데
그 때의 현상을 보다 깜짝 놀라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니
'陰氣만 자라고 陽氣는 꺼져 가니
마땅히 일찌기 변별을 해야겠소
사태가 더 심각해진 뒤에는 비록
초야에 가 묻히려해도 되지 않을 것이오'하였다.
신잠이 유배가서 장흥부사로 있던 조세보의 이야기를 듣고
비록 만나지 못하지만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함께 하는 이야기가 된다.
두째 시는
달밤에 유배온 신잠은 조세보가 세상이 어지러워 변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인생무상에 대해서 토로하고 있다
(조세보의 달밤에 지은 시가 있다)
첫째 시는 조세보가 구체적으로 장흥의 신씨 분파에 대해
어찌 다음이라 했는 지 알 수는 없으나(조세보는 고령이 순서나 연원에 우선이라는 뜻으로 이야기 했을 것이라 추측되고
신잠은 주요 세거지로 고흥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해 부인하며)
우스개소리로 좋게 마음먹고 근심까지도 즐기며 위안하고 있다.
고령 신씨의 분파가 장흥에서 사는 부분에 대해 자부심을 토로하고 있다.
장흥號는 지역명에 붙이는 택호(장흥댁)로 봄이 맞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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