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창녕 조씨'에 관련한 어떤 한시 해석?
조선 시대 중종조에 '영천 申潛(1491~1554)'이 있었다.
'시서화 3절'이었다.
고령 申씨, '신숙주'의 증손자로 당대의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만 기묘사화 여진이라 할 '안처겸 옥사'에 연루되어
1521년, 나이 30세에 장흥 땅에 유배와 무려 17년 유배살이를 했다.
어찌보면 정약용보다 더 불행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정약용은 1801년, 나이 39세에 18년 유배살이를 했다.
영천 신잠, 그가 장흥 유배생활을 하면서'창녕 조씨,曺輔之'란 인물을 만났다.
그때 그 '조보지'에게 준 시이다.
ㅡ조석현 동문에게 질의드립니다.
ㅡ고령 신씨와 창녕 조씨간의 상계에 어떤 연원이 있는지요?
단지 고령과 창녕이 옛 가야 고을에 속하는 이웃 고을이란 사정만으로
아래 시처럼 "分派自吾宗"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지요?
ㅡ또 그 '조보지'를 혹 '망기당 조한보?'로 볼 수 있는지요?
아니면 창녕조씨 누구인지요?
燈下寫懷 贈輔之
輔之見烏次 分派自吾宗
譜系誰云遠 情懷頗自濃
身閑在田野 氣朴到羲農
笑語時相對 愁心或可悰
-烏次長興號
(졸역)曺輔之를 장흥 땅에서 보나니, 그 분파는 우리 집안에서 나왔네.
조상 계보는 비록 멀다해도, 그 정회만큼은 자못 깊고 진하다네
몸은 한가히 田野에 있다지만, 氣朴함이야 복희신농 세상과 같다네
우스개 소리로 때 맞춰 상대하니,愁心이 혹 즐거움이 되네그려
月夕對曺輔之 寫懷
自笑男兒事 東西未可期
冠山曾不到 吾子거能知.....거 = '言+巨' /관산 = 장흥
今夜庭前話 他年何處思
堪嗟人與地 去去每相離
(졸역) 스스로 우스워라 대장부 일, 동서를 기약하지 못한다네
장흥땅에 이전에 온 것 아닌데, 내 어찌 그대를 알았겠는가.
오늘밤은 뜰앞에서 이야기를 하나, 다른 해엔 어느 곳을 생각해야하나
안타까와라 땅에 묶인 몸, 가고 갈수록 매번 이별을 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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