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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주먹의 계보(33)
작성자송기병 이메일[메일보내기] 작성일2013/01/06 12:43 조회수: 511

80년대 국내 주먹계를 평정한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5일 새벽 심장마비로 숨졌다.

조양은과 더불어 이른바 한국 조폭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김태촌의 사망을 계기로 한국 주먹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 1세대 : 낭만파 주먹

1세대는 일제 강점기 시대를 풍미했던 낭만파 주먹들이다. 김두한(잇뽕), 고희경(구마적), 엄동욱(신마적) 등과 

조직에 속하지 않고 홀로 활동했던 이성순(시라소니)이 대표적인 주먹들이다. 

이들은 나라를 잃은 울분과 설움 속에서 일제세력에 대항하고자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후대 조폭들과는 차별화된다. 

협객을 자처했던 이들은 조선 상인을 보호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조직을 결성해 명동·종로 상권을 장악하려는 일본 세력과 맞서 싸웠다. 영화 ‘장군의 아들’이나 드라마 ‘야인시대’로 알려져 있듯이 종로 우미관을 주무대로 최대 세력으로 부상한 김두한파는 

명동과 을지로, 충무로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 조폭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러나 조선주먹패는 김두한파가 종로와 명동의 경계인 수표교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하야시파에 패한 뒤 급속도로 약화된다.

◈ 2세대 : 정치깡패

광복 이후 일본 주먹세력이 사라지고 좌우익 대립 등으로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자 

조선주먹패는 정치세력과 결탁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폭력조직으로 변모하게 된다. 

정치세력의 하수인으로 각종 이권을 챙기는 정치깡패들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김두한은 대한민청 소속으로 파업 현장 습격 등 좌익척결에 앞장서면서 정계로 진출하고 

주먹세계는 이북파인 이화룡과 이성순(시라소니)의 명동 사단과 이정재, 유지광, 임화수의 동대문 사단으로 양분된다. 

이후 일련의 테러사건에 따른 깡패 소탕으로 명동 사단은 무너지고 

자유당 정권의 비호를 받은 동대문 사단만 살아남아 본격적인 정치깡패로 철권을 휘두르게 된다.

씨름장사 출신인 동대문사단 보스 이정재는 자유당 정권의 2인자인 이기붕과 손을 잡고 

야당발기인대회 방해사건인 장충동테러사건을 주도하는 등 정치테러를 일삼으며 암흑계의 제왕으로 군림한다. 

하지만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다 이기붕과 갈등을 빚은 끝에 몰락하게 된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연예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임화수. 그는 이승만 대통령을 아버지로 부르며 총애를 받았고 

1960년 고대생 습격사건 등 정치테러를 자행했다.

그러나 권력을 배경으로 황금기를 누리던 정치깡패들은 4.19 혁명으로 자유당과 운명을 같이하게 됐고 

이정재, 임화수는 5.16 군사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3세대 : 전국구 & 사시미칼 

군사정권의 서슬아래 맹주들이 퇴장하자 지방의 신생 조폭이 속속 상경하면서 조폭세계에 전국구 시대가 열린다. 

지방 신흥세력이 중앙무대를 장악하는 신구세대 교체의 기폭제가 된 사건은 1975년 명동 사보이 호텔에서 일어난다. 

조양은이 이끄는 ‘전라도파’(양은이파)가 서울 ‘신상사파’와 주먹계 원로들의 신년회 자리를 기습한 것이다. 

곧이어 김태촌의 ‘서방파’도 광주에서 상경한다. 1976년 김태촌의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사시미칼 습격 사건이후 

주먹계에 사시미칼과 낫, 도끼등 흉기가 등장하면서 한국 조폭은 더욱 잔인하고 흉포화되기 시작한다.

결국 80년대 들면서 서울을 분할 점령한 ‘양은이파’와 ‘서방파’, 이동재의 ‘OB파’ 등 호남 3대파는 3대 전국구 폭력조직으로 성장하게 된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소재가 된 부산 조폭계는 일본 야쿠자와 최초로 손을 잡은 ‘칠성파’와 ‘20세기파’가 장악하게 된다.

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 바람이 거세지자 권력은 다시 깡패를 찾아 각종 정치테러를 일으킨다. 

1987년 통일민주당 지구당 창당 방해 사건인 일명 ‘용팔이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 때 한국 주먹계를 주름잡았던 김태촌도 결국 돌아갔다(담양으로).

덧글 ()

송기병  / 2013-01-06-23:50 삭제
(김태촌과는 질적으로 그 차원이 다르지만)

내 고향(고흥) 출신 '김일 선생'은 주먹이 아닌 박치기로 세계를 제패하며 

당시 피폐했던 우리네를 위로했었다. 하지만 生의 마지막은 참으로 쓸쓸하기 그지 없었다고 한다.

民草인 나도 10년 후엔 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여 이 깊은 밤 외로운 술잔을 채우며 뇌까려 보는 것이다.



"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 속을 참 오래도 걸었네

긴 꿈이었다면 덧없게도 잊힐까

대답없는 길을 나 외롭게 걸어왔네

푸른 잎들 돋고 새들 노래를 하던

뜰에 오색 향기 어여쁜 시간은 지나고

고마웠어요 스쳐간 그 인연들

아름다웠던 추억에 웃으며 인사를 해야지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았다면

이 밤 외로운 술잔을 가득히 채우리



푸른 하늘 위로 웃음 날아 오르고

꽃잎보다 붉던 내 젊은 시간은 지나고

기억할게요 다정한 그 얼굴들

나를 떠나는 시간과 조용히 악수를 해야지

떠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면

이 밤 마지막 술잔에 입술을 맞추리

긴 꿈이었을까 어디만큼 왔는지

문을 열고 서니 찬 바람만 스쳐가네"
허주회  / 2013-01-07-10:30 삭제
진짜 주먹은 벌교주먹이다. 

벌교주먹은 의병장 안규홍이 벌교장터에서 일본 헌병을 맨주먹으로 때려 죽인 사건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즉 깡패들의 주먹이 아니라 항일운동에서 시작된 정의의 주먹이라는 의미이다.

벌교는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홍암 나철 선생의 고향이기도 한데,

그의 영향으로 많은 독립운동가와 의병장들이 활약을 하였으며 일본군과의 전투에서도 벌교 주먹의 전통을 이어받아 많은 승전보를 올리기도 했다. 

영화 '황산벌'이나 '써니'에서 벌교 욕쟁이가 언급되기도 하는데 주먹 쓰면서 일본놈들에게 욕한 것이 벌교 욕쟁이로도 알려진 것이 아닐까?

어쨌든 진정한 주먹은 벌교주먹이다.
송기병  / 2013-01-07-12:35 삭제
주회거사!   옳은 말일세.

옛말에 '여수가서 돈자랑말고, 순천가서 인물자랑말고, 벌교가서 주먹자랑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고흥사람들이 광주나 서울을 가려면 벌교를 꼭 거쳐야만 했는데, 벌교주먹들 등살에 힘들었다네.

그러다보니 김일선생, 유제두, 백인철같은 세계챔피언들이 탄생한거지.

벌교주먹들로 인하여 우리 高興人의 잡초근성이 태동한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고맙게 여기고 있다네.
조석현  / 2013-01-08-22:29 삭제
일제시대 지배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벌교가 흥하여 

1968년 인구가 4만 6488명, 

시승격 운동이 펴쳐지기도 했는데...5만명을 못 넘고

지금 2002년엔 1만 8148명에 불과합니다.

벌교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안규홍은 담살이 머슴이지만

원래는 양반으로

절의론으로 유명한 죽산 안씨 안방준 의병장의 10대손입니다.



어릴 적 비들고개에 있는

안규홍장군의 비석을 많이 보았지요.

그 비들고개 바로 옆에 우리 고구마밭이 있어서

고구마 캘 때면 가서 보았지요



친구 할아버지가 그 비들고개 전투를 직접 보았다는데

안장군이 논둑 뒤에 숨었다 날쌔게 일어나

고개를 넘어오는 일경의 목을 베는 것을 보았다하네요
조석현  / 2013-01-08-22:46 삭제
의병활동은 전라도가

그중에서도 보성이 의병활동이 가장 활발했고

그 주축이 안규홍 평민 의병장이었는데



안규홍의 업적이야

신돌석은 그야말로 족탈불급인데...



역사책에는 신돌석만 나오니

다~ 후손탓이야

후손들이 잘 되어야 해
송기병  / 2013-01-09-08:02 삭제
조석현 대감도 보성(벌교)에 대한 애향심이 대단하구먼 그랴!

박형상 동기도 장흥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던데, 나 또한 둘째 가라면 서러울테고...

장흥, 보성, 고흥은 서로 맞닿아 있으니 우리들은 기냥 '장보고'출신으로 통합하는 게 어떠한가?
조석현  / 2013-01-09-08:45 삭제
기병이 짝짝짝!!!!!!

해상왕 장보고!!!!!!

그럼 내친 김에 '장보고회'도 만들어 지는 가?

여수,여천시,여천군이 통합한 3여 통합이 생각나는구만



'장보고'는 보성만을 끼고 빙 둘러 있어

보배로운 성[보성]이요, 길이 흥[장흥]하고 높이 흥[고흥]하겠네
허주회  / 2013-01-09-10:21 삭제
'장보고' 거 이름 좋네.  뜻풀이도 좋고...
송기병  / 2013-01-09-18:17 삭제
'장보고'출신도 꽤 될텐데, 조만간 '장보고회' 소집 한번 해야겠네 그랴!
송기병  / 2013-01-10-13:00 삭제
주회거사!

보성출신이 자네들 둘 말고 몇이나 더 있으신가?
박형상  / 2013-01-10-18:23 삭제
ㅡ오늘서야 보았네..<장보고회> 좋네! 뭐 <장수>도 '장'이니 함께 넣어주지요..

ㅡ그런데..바로 말하기 뭐하지만 ,,.오해는 마시고....

그 벌교 주먹이 나중엔 좀 변질되어 <벌교역 구두닦이 주먹>을 말하는 것도 같던데...^^ ^^
박형상  / 2013-01-10-22:52 삭제
ㅡ그러니까 ㅡ 그 시절은 구두닦이 주먹들이 기찻길을 타고 상경햇던 것 같아요,

,...이리역.....천안역......목포역...

ㅡ그런데 목포 주먹엔 순수 목포는 드물고.

....대개는 '신안,해남,무안' 아이들이 '목포 간판'을 달았던 것 같고요..
송기병  / 2013-01-11-08:08 삭제
박변께서 뒤늦게 들어오셨구먼...

벌교주먹을 폄하하진 마시게, 옛날엔 구두닦이가 요즘 상권과 같았으니까 말이시.

'장수'출신 이몽룡 원장과 '장흥'의 박변, 위금량, '보성'의 조석현, 허주회,

'고흥'은 많다네. 김일선생과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진영천, 김현웅 검사장, 신순식, 곽준호, 송영천등등...
허주회  / 2013-01-11-09:08 삭제
이경구가 보성출신으로 고등학교 때 경구 따라서 보성출신 광주 모임에 한 번 간 적이 있었네.

벌교주먹이 원래 항일주먹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나중에는 주먹을 의롭게 쓸 일이 별로 없으니 

조폭으로도 좀 갔을 테지.
박형상  / 2013-01-11-10:09 삭제
ㅡ읽은지가 오래되어 가물거리는데.....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도  혹 그런 벌교 주먹의 전통이 좀 녹아있는지 모르겟네...
허주회  / 2013-01-11-13:01 삭제
벌교가 주먹이 좀 되니까 대가 세다고 할 수 있겄제. 여자들도 추운 겨울에 갯벌에서 뻘배 타면서 꼬막 채취하는 중노동을 하니까 기가 세고.. 그리고 벌교는 보성군에 속하면서도 보성읍과 라이벌의식이 있고,  염상구와 주먹패 이야기가 태백산맥에서도 조금 그려져 있제.. 소설 '혼불'에서는 득량면 오봉리의 강골마을과 그 옆의  허씨 마을이 나오는데 내 고향이 '오봉리'이지만 우리 집안 얘기는 아니네..
송기병  / 2013-01-12-10:07 삭제
주회거사도 시대를 제대로 만났으면 한가닥 했을 터인데,

요즘같이 혼탁한 속세를 떠나 탐라에서 조용히 도 닦고 있는 자네도 보통사람은 아니제...
송기병  / 2013-01-12-12:46 삭제
8일 오후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주민이 4000여 명뿐인 이곳에 관광버스 10여 대와 검은색 고급 승용차 수십여 대가 줄지어 도착했다. 

‘갑향군립묘원’ 앞에 멈춰 선 차량에선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남성들이 내렸다. 

국내 최대 규모의 폭력조직 ‘범서방파’의 두목이었던 

고(故) 김태촌(향년 63세)씨의 유해 안치를 돕기 위해 따라온 후배 조직원들이었다. 

담양은 김씨의 고향이다. 

유해 안치를 지켜보던 주민 김모(70)씨는 

“전국을 주름잡던 유명한 조폭 대장이라더니 결국 한 줌의 재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화장을 한 김씨의 유골함은 이날 납골당 내 5000여 개의 안치소 중 한 곳에 놓였다. 

1980년대 국내 3대 폭력조직 중 하나를 이끌며 주먹세계를 풍미했던 김씨가 

15년치 임대비용이 80만원인 ‘작은 납골당’에 영원히 갇히는 순간이었다. 

생을 마감한 뒤 주어진 공간은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24㎝에 불과했다. 

김씨의 부하들은 눈물을 훔쳤다.
송기병  / 2013-01-14-18:26 삭제
《Re》조석현 님 ,

<장보고회> 발기대회가 오는 27일 있을 예정이니 必히 참석 바랍니다.
조석현  / 2013-01-14-18:51 삭제
《Re》송기병 님 ,

송기병  / 2013-01-20-09:47 삭제
1960년대 서울 주먹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전남 벌교 출신 '문무회'다. 

유지광과 동세대인 문무회는 중앙정보부 수사관이면서 주먹계 최고 실력자였다. 

1960년대 서울로 올라온 호남 주먹들 가운데 그의 도움을 안 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말년의 김두한에게 경제적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명종  / 2013-01-23-04:44 삭제
으미~, 무시라 !



뭔 주먹얘기로 도배를 한당가?



겁나게 겁나서 어디 동창들 만나것는가?



ㅎㅎ^^



명종이는 초딩때, 병윤이랑, 병섭이랑, 조폭영화탐람으로 폴새 섭렵을 해불고,



그뒤로는 조폭관심 뚝! 하는 바람에...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조폭들은 그래도 일반서민들한테는 별로 민폐를 안끼치는 편인디,



이놈의 하나회군벌조폭들은 두고두고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하고 열받히게 한당게!



결국, 이번에 개표쿠데타로 나라말어먹을 조폭누님'까지 등장하고 만거 아닝가잉?
기명종  / 2013-01-23-04:51 삭제
태촌두목이 잠들게 된, 담양은 우리외갓집 동네라 참 애정이 가는 시골인디,



하나 더 생각나는 것은, 지난 18대선에 3고초려를 고려했던, 명종이 사돈되시는



정찬용, 전 노대통령 인사수석비서관 선배님(44회)이



말년을 평화롭게 칩거하시는 아주 소담스러운 마음의 고향 이네. 



^^
송기병  / 2013-01-23-13:15 삭제
《Re》기명종 님 ,

기후보께서 후보 등록을 포기함에 따라 박그네에게 정권이 넘어간 것 아니겠는가?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셔야 하네. 우리가 창녕조씨나 주먹얘기로 담소할 수 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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