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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ㅡ조선의 차문화, '미공개 편지'부분에 관련하여
작성자박형상 작성일2012/10/30 15:24 조회수: 292

ㅡ'조선의 차문화'와 '정수칠,이관기'



기왕에 <정민, 조선의 차문화,2011>를 거론했던 김에 한 가지 더 지적해본다.

정민 교수는 그 책 제164쪽 이하에서 '그간에 미공개되어온, 정약용의 茶 관련 편지'라고 하면서

<'관성 冠城'에 사는 '예려 汭旅'에게 보낸 편지 3통>을 소개하고 있다.



요컨대, 정교수는 그 '편지 수신자'를 그 당시 장흥 반산에 살던 '장흥사람, 제자 정수칠'로 단정하고서

정교수 그 자신이 따로 만든 <조선후기 차문화 활동 연보(책제656쪽)>에도 그 사정을 기록해두고 있다.



그러나 재고의 여지가 있다.

정민 교수가 그 편지에 등장하는 "冠城"을 '장흥'에, "汭旅"를 '예양강'에 결부시킨 것은 합당했지만,

그렇다고 그 편지의 수신자를 '정수칠(1768~ ?)'로 바로 단정함은 크게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제자 정수칠'은 다산시문집(여유당전서)에 실린 <정약용이 주는 증언 편지>의 당사자로도 나오는데, 

그때의 편지 문투, 편지 내용과도 전혀 다름은 물론이다.



우선, 일반적 상황을 검토해본다.

편지의 전반적 내용 자체가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주고 받기엔 부적절한 성격의 것이다.

또한 '강진의 유배객'과 '장흥의 토박이' 사이에 주고받을 만한 내용이 아니다.



'발신자(정약용) 호칭' 부분을 보더라도 그렇다.

정약용은 그 편지를 보내는 자신을 두고 '척戚''병척病戚'이라 자칭하고있다.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戚'의 본뜻을 따로 정리하고 있을 정도인데, 

그가 아무에게나 '戚'.'病戚'이란 말을 대충 쓴 것은 아닐 터이다.

비록 멀기는 하나 그 편지 수신자는 실제로 '戚' 관계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 정수칠은 그런 '戚, 인척' 관계에 있지 않았다.



이제 <세 통의 편지>를 차례로 살펴본다.



-첫번째 편지를 보자.

그 편지의 '제목,수신자,보낸 시기' 등 표시는 없다.

그런데,정교수의 주장대로 '장흥의 제자 정수칠'이 그 수신자라면 

그 장흥 제자를 '강진에 오라'고 불러서, 또 직접 茶 봉지를 전달하면 손쉬울 터인데.

"일전에 손수 쓰신 글월을 받자옵고, 객지 생활에 별고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라든지 

"차를 조금 보냅니다. 다만 이 물건은 원기를 크게 손상시키니...조심히고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라든지

"잠시 다 갖추어 적지 못합니다"라고

정약용이 그 편지에서 말한다는 것은 뭔가 크게 어색하다.



또한 그 편지에서 '자신의 해배를 반대하는 홍명주의 상소'를 두고 "홍소洪疏"라고 거론하고 있는데,

이런 내용은 제자 정수칠에게 굳이 그런 식으로 말해줄 만한 성격의 것이 못된다, 



그리고 그 수신자를 '객지 생활'을 하는 "客"의 지위로 표시하고 있는데, 

제자 정수칠은 장흥에서 누대로 세거해온 영광 정씨 '현지 토박이'일 뿐이다. 



여기의 "客"은 정교수가 주장하듯 문학적 수사로서의 '인생길 나그네'가 아니다.

말 그대로 '타향땅 나그네'라고 보아야 합당하다.

'객지 생활에 별고 없느냐'는 편지글은 실제의 현실적인 안부 걱정으로 보아야한다.



그리고 한번 더 생각해보자.

강진과 장흥은 지척지간인데, 강진에 있는 스승 정약용과 장흥에 사는 제자 정수칠 사이라면

아주 급박한 사정도 없는 바에야 굳이 번거롭게 그런 편지를 주고 받았야만 했을까? 

정수칠은 정약용의 '다신계 18제자'중의 한사람으로 등재되어있다. 

정식 제자이다.

그런 제자 정수칠이라면 강진의 스승에게 일상적으로 찾아가는,

언제라도 찾아가 뵐 수 있는 사이로 보아야한다.



-두번째 편지를 살펴본다.

그 피봉에 "관성(冠城) 회경 다산 사첩"이라 기재되어 있다.

"관성"은 관산(冠山), 즉 장흥의 고호이다. 장흥 땅을 지칭한다.



정교수는 '장흥(관성)'이란 지명에 착안하여 '장흥 제자 정수칠'로 단정했을 것이라 여겨지는데,

그 편지 내용은 장흥에 사는 제자 정수칠의 개인적 처지와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삼가 근황이 편안하신 것을 알게되니 깊이 마음이 놓입니다"라든지

"아우님께서 부탁한 것은 이제서야 약방문을 찾아서 베껴 써서 보냅니다""라는 문구도 그렇다.

"좁은 집이라 茶 주머니가 기거에 거추장스러워 괴롭기 짝이 없을 터이니"등은 

장흥땅 제 집에서 평온하게 살고있는 제자 정수칠의 사정에 전혀 무관하다. 

'터무니없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 스승의 편지가 정수칠에게 배달되었다면 제자 입장에 아마 기절초풍했을 일이다.



-세번째 편지를 살펴본다.

그 제목이 "봉사예려(汭旅)  다산수첩"이라 되어있다.

"예려"는 "예양의 旅舍"라는 말인데, '汭陽'은 장흥읍을 지나가는 '예양강''예수'를 지칭한다.

( 필자의 닉네임이 '예양강,예강,예수,예지수'이다. ^^ ^^)

결국 '장흥의 旅客'이라는 뜻이겠다.

즉 그 편지 수신자는 '일시적으로 장흥땅에 머물고 있는 객지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그 둘째.세째 편지에서 '冠城'의 '汭旅'라고 빗대지고 있는 것이다.



또 정약용이 '고향에서 가아(家兒)가 강진 유배지에 오고간 사정'까지 거론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약용과 그 수신자는 서로 '척戚' 관계에 가까운 개인적 인연도 있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정약용은 "그곳 장흥땅 객지 생활은 별고없으신지"라고 상대방의 안부를 물으면서

"저는 문을 닫고 이불을 뒤집어 쓴채 다만 서사(書事)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면서

그 역시 '강진 객지에서의 자신의 사정'을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것을 보면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는 관계이다. 

발신자와 수신자 서로간에 "좁은 집"을 말하며 특히 '건강'과 '거처'를 걱정한다.

뭔가 그 처지가 비슷하다.

<세 통의 편지>를 종합해보면, 客과 客이 오랫동안 서로 못 만나고 있으며,

'장흥~강진' 지척거리에도 자유롭게 오고갈 형편이 아니라는 사정이 그 행간에 드러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보자.

혹, 둘 다 '타향 땅 유배객' 아닐까?

그 편지 수신자 역시 신유사옥 때의 '같은 유배객'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마침 그런 유배객이 있다.

정약용이 유배되던 1801년 겨울에 장흥 땅으로 유배온 사람에 <이관기,李寬基>가 있다.

<이관기>는 연안 이씨, 정약용과 당색이 같은 '남인' 출신이다.

번암 채제공의 '遊 관악산記(정조10년,1786년)'에 나온다.

채제공은 남인의 영수이다. 

채제공의 아들되는 채홍원의 서자가 정재원의 서녀, 즉 정약용의 배다른 누이동생과 혼인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순조1년11월)이나 정약용이 쓴 '선중씨(정약전)묘지명'에도 <이관기>가 등장한다.

"약전과 약용, 이치훈, 이학규, 이관기(李寬基),신여권(申與權)'등.....

저 여섯 사람은 역적과 매우 가까운 인척(姻戚)이다"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이때 말하는 '역적'은 황사역 백서사건의 그 '황사영'인데, 정약용의 큰형 정약현의 맏사위이다.



'이치훈'은 정약용의 매형되는 이승훈의 친동생이다.

'신여권'은 정약용의 막내 작은 아버지의 큰 딸과 혼인한 사이였다. 

<이관기>에 대해서도 '이치훈,신여권'같은 그런 '인척 관계'를 전제하여 다시 읽어보면, 

정민 교수가 그 책에서 소개한 <세 통의 편지>내용이 너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강진 유배객'과 '장흥 유배객' 사이에 오고간 안부편지로 여기면 너무나 자연스럽다.



또한 그 두번째 편지에서 정약용이 그 자신을  "누인累人"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신유사옥 발생과 남도천리 유배에 '정약용의 집안 일'이 그 직접적 단초가 되었던 만큼 능히 가능한 문구이다.

즉 '정약종(정약용의 형)의 책롱사건'과 '황사영(정약용의 조카사위) 백서사건'으로 생긴 고초에 대하여 

정약용이 '그 같은 유배객 이관기'에게 미안해 하는 겸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스승 정약용이 장흥의 제자 정수칠에게 '누인'이라 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관기>는 다산 정약용의 '자찬묘지명'과 '죽대선생傳'에도 그 이름이 언급된다.

정약용이 쓴 '선중씨(정약전)묘지명'에 나오는 그 유배객 명단에도 '이관기'가 들어있다.

서로 인척관계에 같은 南人 당색이기에 평소에도 가까운 사이로 여겨진다.

(장흥지역 기록에서는 칮을 수 없었다)



덧붙인다.

정약용과 편지를 주고받던, 그 장흥땅 유배객 '이관기'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1818년경에 '정계(停啓)'되었다"는 기록까지는 남아있다.



신유사옥(1801년) 동옥 사건의 여섯명 유배객의 각자 운명은 서로 달랐다.

정약전은 1816년에 흑산도에서 죽고, 

정약용은 1818년에 강진에서 해배되고,

이치훈은 중간에 제주도에서 '물고'되고,('죽었다'는 말이다)

이학규,신여권은 1824년에야 겨우 석방되었다.



'이관기'는 과연 제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갔을까?

기록에서는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그 집안 족보에는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일이어서 부질없겠지만, 

나는 그가 그 고향에서 평온한 여생을 마쳤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덧글 ()

박형상  / 2012-10-30-15:41 삭제
ㅡ정민 교수는 평소 그 글의 적확성, 치밀한 자료 수집으로 정평이 있는데, 

이 부분 '미공개편지 수신자'에 관한 '정수칠'과 '이관기 '혼돈 건은 너무나 황당할 정도이어서 

오히려 그 무슨 곡절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나웅인  / 2012-11-01-10:43 삭제
차에 대한 연구가 정사부분은 거의 정리가 되어 요즘은 간찰 부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네.

그런데 간찰의 해석에는 너무 많은 자료와 연구가 필요한 것 같아.

그래서 그와 같은 오류들이 많이 발생한다네.

그런데 가장 큰 문제점은 정확하지 않은 것들을 정확한 것처럼 발표하여 그것이 정설처럼 퍼져 나가는 것이네.

우리 역사에도 그런 것들이 많지만 차 분야에서 대표적인 것이 차에는 五味가 있다는 것이네.

인문학에서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은 것이 무지 중요한데........

글 잘 보고있네.
박형상  / 2012-11-01-11:20 삭제
ㅡ쌩유!.....<노주 선생>...재작년 가을인가..광주 계림동 ..고물 가게에 들렸다가...

'茶 관련 부분이 들어있다는 고 문헌'을 보게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읽어낼 형편도 못되고, 그 가격도 너무 높아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데..

.....이런저런 여유가 있다면 ......노주 처사가 한번 가서 다시 살펴보시길.....
나웅인  / 2012-11-01-11:27 삭제
책 제목이 뭔디?
박형상  / 2012-11-01-11:46 삭제
ㅡ독립된 책자가 아니고 ......다른 필사본 책자의 뒷부분에 ...

......이런저런 '차'관련 부분을 옮겨놓은 것....

기왕에 발표된 것도 있고......처음 보는 것도 있는 것 같던데....

그날 장흥에 내려가는 길에 ......계림동 ㅡ 화순길로 빠지다가 잠시 들리게 된 것....구역에서 계림동으로 내려가는 초입 부분의 고물상......그 주인은 우리 보다 약간 어리고...

.........고서 전문가게는 아닌...일반골동품 고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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