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정약용과 '황엽사(黃葉寺)
-'황엽사'를 아시나요?
'정약용의 황엽사'를 아시나요?
'황엽사'를 말한 옛 시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일 그럴 듯한 게 '정약용의 황엽사'.
그 노란 색감이 대단했던 모양.
아직도 울울창창한 천년목 압각수.
그 나무가 때가 되면 절 이름을 바꾸어 버린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서있는 가을 용문사'를
'황엽사'로 줄인다.
황엽사.
너무 간명하다.
왜 아무도 그 생각을 못했을까?
정약용 선생도 더 젊었을 때는 '용문사'라 말했다.
용문사'의 '龍門'이란 말에 더 무게를 두었을 것.
'등룡문'을 연상했을 것.
그러다 70세, 1831년 늦가을,
그 황혼에 이르러 드디어 보았다.
다 털어내고,
'황엽사'.
친구 이휘영에게 '황엽사에 놀자던 약속이 깨져버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 詩에서 '黃葉寺'에 짝이 되는 '白雲峰'은 용문산 부근의 봉우리이다.
더 젊었을 때 남긴, 다른 '용문사' 詩와 비교해보자.
노랗게 물든 '평중엽(平仲葉)'이라고 어렵게 말하고 있다.
은행나무 그늘을 '압각음(鴨脚陰)'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詩에 '秋山 黃葉裏'이란 어구가 등장은 하나, 아직 '황엽사'에 못미쳤다)
그때만 해도 정리벽이 남아있고 교술적이었다.
올 가을에는 우리 모두 '黃葉寺'에 가보자.
툴툴 털고 가보자.
노란 바람, 노란 비를 맞아보자.
'金秋'라 말할 것도 없다.
'황엽사'에 가면 '黃秋'가 있다.
이하, 정약용의 시를 소개한다.
ㅡ'운환 이휘영'이 오다......1831년 늦가을,70세
[雲寰 李輝永 至]
한나절을 배를 타고 오 리를 걸어와서 / 半日划船五里筇
기구하게 서로 대하니 둘 다 노쇠하였네 / 崎嶇相對各龍鍾
온갖 꽃들은 이미 시름 속에 다 져 버렸고 / 百花已向愁中盡
귀밑머리는 모두 난리 뒤에 만난 것 같구려 / 雙鬢渾如亂後逢
황엽사에 놀자던 약속은 이미 저버렸는데 / 舊約空抛黃葉寺
병든 마음은 아직도 백운봉을 못 잊는다오 / 病魂猶繞白雲峯
가을에 나락 잘 되기를 누가 능히 보장하랴 / 秋來稫稜誰能保
슬프도다, 山門은 겹겹으로 막혔네그려 / 怊悵山門隔數重
ㅡ용문사(龍門寺)....1820년9월,59세
龍門의 보찰이 폐허에 버려져 있어라 / 龍門寶刹委殘墟
客이 이르니 빈 山에 목탁 소리만 들리네 / 客到山空響木魚
옛 전각엔 평중의 잎새가 누렇게 비추고 / 古殿照黃平仲葉
황량한 대엔 무후의 채소가 새파랗구려 / 荒臺寒碧武侯蔬
세조가 하사한 것은 은주발이 남아 있고 / 光陵內賜餘銀盌
고려의 불교 종풍이 옥섬돌에 보이누나 / 麗代宗風見玉除
어찌하면 처자식의 거리낌을 털어 버리고 / 安得擺開妻子戀
설천에 눌러앉아 성인의 글을 읽을거나 / 雪天留讀聖人書
[평중(平仲)의 잎새 : 은행나무잎을 이름. 평중은 은행나무의 별칭이다.
[무후(武侯)의 채소 : 무를 이름.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이 군사들에게 항상 무만을 심어서 먹게 한 데서 이를 원래 제갈채(諸葛菜)라 한 것인데, 여기서는 제갈량의 시호로 전용한 것이다.
ㅡ현계잡영 10절.........1827년 봄?
ㅡ제4수
낡은 기와 황폐한 대사를 龍門이라 부르는데 / 荒臺破瓦號龍門
은행나무 그늘이 채소밭에 덮이었네 / 鴨脚陰開野菜園
아직도 기억난다, 가을 산 노란잎 속에서 / 尙記秋山黃葉裏
닭 삶고 콩 삶아 땅거미지도록 놀던 일이 / 烹鷄瀹菽到初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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