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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약용과 '시들은 연잎(1)'
작성자박형상 이메일[메일보내기] 작성일2012/09/12 23:08 조회수: 332

ㅡ정약용과 "시들은 연잎(敗荷),1"



 정약용 선생의 詩는 '애민 우국, 계도 교술적 성격'이 대부분이다.

널리 알려진 "애절양"처럼, 음풍농월을 배제하며 사실성에 충실한 '사회시'이다.

그래서인지 애상적 내용은 매우 드물다. 



 詩,"시들은 연잎(敗荷)"은 꽤 감상적이다.

그의 눈에 비치는 대로 연못에 피어났다가 시들어가는 모양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결국에는 정약용 그 자신의 개인적 모습이라 하겠다.

그의 말마따나 '그를 위한 悲歌'이다.



정약용은 때로 '주변 사물에 그 자신을 의탁하는 표현'을 구사하였다

'마음껏 치닫지 못하는 천리마, 

하늘 높이 날지 못하는 송골매. 

울지 못하는 병든 종(쇠북)'등이다. 



강진 유배 8년째,

'잎은 시들어도 아직도 하늘을 치받은 꽃대궁의 심정', 

오로지 자긍심과 오기로 정약용 그 자신을 지탱하고 있다.



결코 '패배자,loser'는 될 수 없다, 

쉽게 사라져 버릴 수는 없다.

다시 피어나야한다,돌아가야한다고 다짐을 해본다.



그래도 한켠으로는 

'敗'에 대한 강박감이 날로 커졋으리라.



 그 얼마전 여름에는 

'蓮을 심지말라'는 '종연사(種蓮詞)'를 짓기도 했다.



 "꽃 심어도 蓮일랑 심지 마세 / 種花莫種蓮

붉은 꽃 흙탕물 뒤집어쓰느니 / 朱華冒溷泥

......................................

서로가 맞는 짝을 만나지 못하면 / 物有不相遇

천 년을 두고 슬픔에 잠겨 있느니 / 千載含悲悽"



 정약용에게도 피고지는 연꽃은 흘러가는 세월의 징표이다.

'지는 연꽃,시들은 연잎'은 가을을 쉬이 끌고와서 어김없이 보내버린다.

그래서 더 서러웠을 터.

그 역시 가을을 타는 남자였을지 모른다.

더구나 혼자인 몸.



젊은 날 누구보다 분주했고, 그 포부도 당당했던 그인지라

속절없이 가는 세월 앞에 늘 민감했었다.

그는 서울에 살 때도 서대문 천연동 '西池'에 찾아가서, 

그 연못에 가득한 연꽃의 영광을 자주 지켜보았다.



그 빛나던 '죽란시사'의 모임 규약 하나가

'초가을 西池 연꽃이 피면 서로 모여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천리 타향땅 유배객, 

48세의 정약용.

'시들은 연잎(敗荷)'을 읊는다.

그때는 몰랐겠지만,

'시들은 연잎(敗荷)'을 아직도 10번은 더 구경해야 했다.

아니,해배후 귀향하고서도 다시 18번을 더 보았으리라.



다시 고향에 돌아온 그,

벼슬길로 복귀하지 못한채 은거 생활이 마냥 계속 되자

'시들은 국화(悴鞠,췌국)라도 아주 져버린 꽃(落花)보다 낫다'고 다시 말한다. 



 그는 어쨌거나 '불패자(不敗者)'이라야 했다.

떨어지는 꽃처럼 한번 피었다가 영원히 질 수는 없다.

시들어도 그 흔적을 남길지언정 영영 사라지는 연꽃이 아니다. 

하늘을 치받는 꽃대궁, 

그 남은 힘이 있으니

세월 속에 시들었다가도 세월 속에 되살아나자고 굳게 다짐한다.



 

ㅡ詩, "시들은 연잎(敗荷)"을 먼저 소개하고,

 더불어 정약용이 쓴 蓮에 관련한 시들을 소개한다.



 

ㅡ시들은 연잎................1808년,47세,초가을에

[敗荷]



들 밖에 새로 닥친 가을빛이 / 野外新秋色

쓸쓸하게 시들은 연잎 위에 앉았네 / 蕭然上敗荷

예쁜 꽃이야 이미 졌지마는 / 已收芳艶了

고심스런 그 마음을 어이하리 / 奈此苦心何

하늘을 치받든 꽃대궁 아직 있고 / 尙有擎天柄

달 잠긴 물결도 그대로 있는데 / 猶餘蘸月波

그 뉘라서 작은 악기를 들어 / 誰將小絃管

날 위해 슬픈 노래 들려주려나 / 爲我度悲歌



 

 ㅡ'서지'에서 노닐며.............1795년,34세,초가을에

[游 西池]



 연잎은 시퍼렇고 연밥은 여물었는데 / 蓮葉靑靑蓮子團

연꽃이 시든 지금 보는 사람 그 누구뇨 / 蓮花零落有誰看

버들 끝에 매미 울어 가을 아직 빠르고 / 蟬吟高柳秋聲早

높은 성에 새 내리니 석양빛이 저무누나 / 鳥下層城返照殘

서늘한 언덕 잡초 山 기운에 젖었고 / 涼塢草含山氣濕

저녁 소반 오이조각 수정마냥 차갑구나 / 晩盤瓜劈水精寒

아마도 두메산골 바위 골창 마을에는 / 遙知峽裏門巖里

누런 벼이삭 거두어 올벼밥 지을 만하리 / 紅稻離離可早餐



 

ㅡ'서지'에서 다시 노닐며.........1795년,34세,가을에

[重游 西池]



숲 속 정자 아래에 말을 매두고 / 繫馬林亭下

버드나무 가에서 바람 쏘일 제 / 臨風水柳傍

석양빛은 연잎에 깃들어 있고 / 夕陽棲菡萏

가을빛은 못 속에 가득하구나 / 秋色滿池塘

담박해도 고운 빛 별다른 연꽃 / 澹淡猶殊艶

널리 깔려 뭇꽃의 일원이로세 / 連延作衆芳

술병이 바닥나도 이대로 앉아 / 壺乾勿遽起

조금 더 맑은 향기 맡아봐야지 / 且復挹淸香 



 

ㅡ蓮을 심는 사연.........1808년 여름 이후, '敗荷'를 짓기 이전에

[種蓮詞]



꽃 심어도 蓮일랑 심지 마세 / 種花莫種蓮

붉은 꽃 흙탕물 뒤집어쓰느니 / 朱華冒溷泥

또 '길광'이라는 새가 있어 / 亦有吉光鳥

가시나무 가지에서 살기도 한다네 / 枳棘枝間棲

납칼은 기름덩어리도 못 자르면서 / 鉛刀不割肪

칼집은 교지산 무쇠가죽이기도 하며 / 鞘以交趾犀

사뿐사뿐 칠보단장 버선으로 / 凌波七寶襪

처량하게 짚신을 신기도 하고 / 葛屨跕凄凄

영롱하고 푸르고 선명한 진주를 / 玲瓏碧瑟珠

새끼줄에다 꿰기도 한다네 / 藁索來穿兮

아 가여워라 '주씨집 딸'이 / 嗟嗟朱氏子

바로 문둥이 아내가 되다니 / 乃爲厲人妻

관옥 같은 얼굴 그리도 아름다운데 / 玉顔澹嬋娟

속된 눈구멍 어찌 그리 어두울까 / 肉眼嗟獨迷

사랑노래 제 아무리 무르익고 / 紅詞豔駘蕩

배불러 피리 거문고 북적대도 / 竽瑟奏東齊

내 평생 아름다운 짝 바랐더니 / 平生燕婉求

꼽추가 하서에 오다니 / 戚施到河西

만두가 비록 동글동글하다지만 / 饅頭雖團圓

떡국이 있는 데야 누가 후회하리 / 湯餠誰噬臍

아 가여워라 '주씨집 딸'이여 / 嗟嗟朱氏子

밤마다 등불 앞에서 운다네 / 夜夜燈前啼

서로가 맞는 짝을 만나지 못하면 / 物有不相遇

천 년을 두고 슬픔에 잠겨 있느니 / 千載含悲悽



[길광(吉光) : 짐승 이름, 혹은 신마(神馬)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그 말을 타면 삼천 세가 되도록 장수한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길광(吉光)이라는 뜻만 취하여 쓴 것인 듯함.《瑞應圖》

 

 

ㅡ'시든 국화(悴鞠)' ㅡ유사(幽事) 두번째 .............1826년 늦가을에 고향에서

 

강정에 홀로 서서 지는 노을을 구경하노니 / 獨立江亭看落霞

저물게 오는 고깃배 소리 이아이아 하누나 / 晩歸漁艇響伊鴉

사나운 매는 끝내 항상 굶주리는 새이거니와 / 豪鷹竟是恒飢鳥

'시든 국화'도 '아주 떨어진 꽃'보다는 낫다오 / 悴菊何如快落花

해내의 친구들이 모두 다 떠나가 버리니 / 海內親交都去了

강가의 차가운 빛이 날로 증가하누나 / 江邊寒色日增加

詩 지음에 연기처럼 없어지도록 일임하노니 / 詩成一任隨煙散

감히 푸른 비단에 싸여 걸려 있기를 바라리오 / 敢羨雕籠掛碧紗



[감히 …… 바라리오 : 당(唐) 나라 때 왕파(王播)가 빈궁하여 양주(揚州)의 혜소사(惠昭寺)에 가서 밥을 얻어먹을 적에 

중들이 그를 꺼리어 밥을 먹고 난 다음에 종을 치곤 하므로, 왕파가 이를 부끄럽게 여겨 시 한 수를 써 놓고 그곳을 떠났는데, 

뒤에 그 지방 장관이 되어 다시 그 절을 찾아가 보니, 이전에 자신이 써 놓았던 시를 푸른 깁에 싸서 잘 보호하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덧글 ()

송기병  / 2012-09-13-08:08 삭제
'다산 사랑'에 푹 빠져 있는 박변을 보니, 

영국인들의 지극한 '셰익스피어 사랑'이 생각나는구만 그려!

영국인들은 300년이 넘도록 지배했던 식민지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를 버렸으면 버렸지

결코 '셰익스피어'는 버릴 수 없다고 했다지 않는가? 

글 읽기도 쓰기도 좋은 계절을 맞아,

나도 영국의 '셰익스피어' 못잖은 '다산' 사랑에 한번 빠져볼까 하네.
송기병  / 2012-09-13-09:52 삭제
세상의 옷이나 음식, 재물은 부질없는 것이고 가치없는 것이다.

옷이란 입으면 닳게 마련이고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썩게 마련이다. 자손에게 전해준다해도 끝내는 탕진되고 만다.

다만 몰락한 친척이나 가난한 벗에게 나누어 준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무릇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으로는 남에게 施惠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그리하면 도적에게 빼앗기거나 불이나서 타버릴 걱정도 없고 소나 말로 운반하는 수고도 없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어느 성경 구절과 비슷하지 않는가?
박형상  / 2012-09-13-14:57 삭제
ㅡ짧지않는 글 읽어주어 감사하이........



ㅡ그 말처럼 정약용의 다른 글, <몽수 傳>을 보면 마치 성경의 <예수 傳> 같다네..

그래서 정약용이 신앙자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천주교 윤리의식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몽수 傳>을 한번 읽어보시게나...
송기병  / 2012-09-13-16:24 삭제
조선시대 사색당쟁의 禍가 신유박해(1801)로 이어져, 스스로 '우리는 廢族이다', '廢族이라 벼슬은 못하지만 

聖人이야 되지 못하겠느냐'라며 고달픈 유배생활에서도 두 아들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마치 예수의 복음과도 같네.

부패한 조선사회에서 民草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낮은 담너머로 백성을 바라본 경세가, 

요즘 대통령이 되겠다는 계집아이가 과연 이 위대한 조상님을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이. 

그 동안 사법부가 하는 짓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대법원 판결은 둘이니 역사에 맡기자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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