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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잠, 제로존?
작성자조석현 이메일[메일보내기] 작성일2012/08/16 23:13 조회수: 344

삶과 잠, 제로존? 



삶과 잠. 살면서도 살기만 할 수 없고 잠도 자야 한다. 잠을 자지 않고 살 수 없다. 잠은 삶의 활력소요 생명의 원천이다. 하루를 마감할 때 잠을 자고 잠에서 깨어나 삶을 시작한다. 인생도 알고 보면 삶과 잠의 연속이라 하겠다.우리가 삶을 살면서도 삶을 잘 모르고 더욱 더 잠에 대해서는 모른다. 잠에 대해서는 관심도 더 적다. ‘잠’을 왜 ‘잠’이라 부를까? ‘삶’을 왜 ‘삶’이라 할까? 



  삶이란 낱말을 우리말의 기본이 우주를 뜻하는 천지인(天地人)에서 왔다는 입장에서 우리말을 분석해 보자. 천지인의 기본 도형은 원방각(圓方角)이고 이것이 한글 기본꼴 곧 ‘ㅇ ㅁ △(ㅅ)’을 구성한다 보는 것이다. ㅅ은 곧 솟는 것, 숫컷을 말하고 곧 사람을 말한다. ㅁ은 당연히 땅이다. 그러면 모음인 ‘ㅏ’는? 모음은 분석대상에서 빠진다. 억지로라면 ‘ㅏ’는 ‘아’로서 ‘ㅇ’은 하늘을 뜻하나 ‘ㅇ’이 붙지 않는 모음이 어디있겠는가? 그러나 숨어 있겠다. 우리말에서 ‘ㅏ’나 ‘ㅓ’는 느낌만 다를 뿐 넘나든다. ‘ㅗ’와 ‘ㅜ’도 그렇고. 또 ‘ㅏ’와 ‘ㅗ’는 별 차이가 없다. 



  그렇담 ‘ㄹ’은 무엇인가? 물론 ㅁ계열이다. 자음에서 ‘ㄹ’은 특이하다. 모음과 가깝다. 부드럽다. 모습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모양이다. 땅의 계열이지만 하늘과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답답한 ㅁ과는 얼마나 큰 차이인가? 위,아래로 다 열린 트인 놈이다. 구부러진 ㄱ과 누어있는 ㄴ을 둘 다 연결하여 막힘이 없다. 



  '사람'과 '삶'과 '사랑'도 다 같은 어원임을 알겠다. '사람'과 '삶'은 낱개로 보면 거의 다같고 '사랑'은 ㅁ대신 ㅇ이 눈에 띈다. '랑'은 아까 분석한 ㄹ의 요소에 하늘의 요소인 ㅇ이 있다. 사랑은 원래 하늘에서 왔고 ㄹ과 같이 막힘없이 흐르고 부드러운 것이다. 그 사랑을 사람인 ㅅ이 하는 것이 곧 ‘사랑’이다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고 실제로 지구에 얽매이니 하늘의 요소인 ㅇ보다 땅의 요소인 ㅁ이 들어간다.(하늘은 ‘ㅏ’속에 숨어버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곧 삶이니 삶도 역시 낱자모 분석할 때의 '사람'과 뜻과 같다. 



  삶이란 글자를 뜯어보면 두 땅위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땅의 요소가 그만큼 강하다. 그래 지구의 삶이란 너무 강한 지기(地氣)에 인기(人氣)가 끌려가는 꼴이다. 사실 그래서 원래 천기가 많으면 자유로울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는 강한 지기에 막혀(ㅁ) 한치앞도 못 보고 윤회전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그나마 ㄹ이 있어 부드럽게 조화하며 사는 것일 것이다 



  잠은 삶보다 ㄹ이 없다. 그리고 ㅅ대신 ㅈ이 있다. ㅈ은 ㅅ계열이다. 그러나 솟아나오는 기운을 누르고 덮어 ㅈ이 되니 잠은 삶이 잠시 쉬는 것이다. 잠시 쉬는 것이 잠이고 더 오래 쉬는 것은 죽음이다. 다 ㅈ이 기본이나 ‘죽음’의 글자는 영계로 가야하니 하늘의 요소인 ㅇ이 더 붙는다. 



  잠이란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쉬는 것이다. 외려 진실로 근원으로, 고향으로 돌아감이다. 그래서 생명에너지를 마음껏 받아온다. 땅의 사람이 하늘로 근원으로 돌아가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다음날이 힘들다. 잠을 자면서 하늘에너지를 받아 다음날 쓰고 다시 충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잠을 잘 자는 것이 건강의 첫째가 된다. 



  '잠'과 '삶'을 숫자로 나타내면 '0'과 '1'이다. 0은 방향자이며 기준이고 1은 크기자이다. 0이 영(零)이고 공(空)이라면 1은 하나(一)요 모든 것이다. 0이 비었고 없는 듯하나 모든 에너지가 다 들어있는 무극(無極)이다. 잠의 속성과 같다. 



  1은 모든 것이 비롯하는 태극(太極)이다. 삶을 1이라 하나 이는 영적인 삶이고 실제 이 지구상의 육적 삶은 3과 같다. 삶은 셋과 삼과 같은 계열이다. 이 3은 곧 1과 통하니 원래 1이 쪼개져 나온 것이다.[一析三極] 아니 원래 1속에 3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1은 모든 수에 있으니 1은 모든 수이기도 하다. 모든 수를 n이라 하면 n = n × 1로써 모든 수엔 1이 있다. 곱셈은 ‘동시에 존재(공통분모)’를 뜻하므로 1은 만물에 함께 있는 것이다. 즉 a×b×c = a∩b∩c= a×b×c×1이다. 이로써 ‘하나’(1)가 모든 것에 강림에 있음을 알겠다. 하나(1)는 크나니 ~님을 붙여 부르기도 하니 곧 ‘하나님’이다. 즉 만물에 하나님이 있음이다. 사람도 삶도 하늘을 떠나서 하나님을 떠나서 없겠다. 



  그러면 0은 무엇인가? 모든 수에 동시에 있으면 그 자신이 사라져 버린다.n×0=0. 수의 블랙홀? 만물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가는 것과 같다. 그 양은? 아인쉬타인이 말했잖아. mc2이라고 



  0은 덧셈의 항등원으로 0은 어디다 더하든 자신의 모습은 없고 변화시키지 않는다. 크기가 달라지지 않는다. 즉 a+b+c = a∪b∪c=a+b+c+0이다. 모든 존재의 근원엔 0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이 ‘동시에’있음으로 ‘시공간’을 내포하여 이 우주를 뜻한다면 0은 ‘동시성’이 없고 ‘시간과 공간’자체를 벗어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시공간까지 아우를 수 있음이다. 



  0은 무(無)로도 새기고 시간, 물질, 공간이 없으므로 우주가 없는 듯하나 실재로 0은 모든 우주에 크기를 갖지 않고 존재한다. 그리고 시간이 없으니 수명도 없고 언제나 현재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 시간이 정지하고 정지된 그 시간의 흐름밖에 0이 있다. 근원의 하나님이다. 오직 이(理)로 존재하니 그것만이 참[眞]이요 물들지 않은 순(純)이다. 0은 사실 중심(中心)이니 사람은 심장에 숨겨져 있음이다. 



  이에 비해 1은 기(氣)에 해당한다. 하늘의 순수 기운이다. 땅의 기운은 2이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합쳐져 비로소 3인 생명이 탄생되니 사람이다. 3은 물질이요 우주다. 비로소 3에서 우주가 완성되니 이를 천지인(天地人)이라 한다. 



  깊은 잠은 곧 0과 특성이 비슷하다. 그러나 잠자는 가운데서도 꿈을 꾸는데 꿈은 1에 가까운 특성이다. 또 삶은 3이다. 그러나 각성은 삶은 1로 가까이 가는 것이다. 



  꿈과 각성이 1과 비슷함은 다같이 하늘기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뇌파도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즉 사람은 3으로 살아도 1과 같이 살려고 노력해야 함을 보여준다. 



  또 삶에서 잠이 없으면 안되듯 0은 모든 수의 고향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1이 곧 0에서 나왔고 0이 본원(本源)이요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천부경에서는 ‘일시무(一始無)’ 곧 하나(1)는 무(0)에서 비롯했다 표현했다. 하나는 온 우주의 비롯이니 무릇 모든 우주의 모태는 결국 0인 것이다. 



  모든 세계는 따라서 0과 1이다. 우리네 인생도 잠과 삶이다. 잠을 잘 자기 위해 살고 잘 살기위해 잔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010101010101.....로. 요게 컴퓨터가 알아먹는 2진법 아닌가? 



  우리나라는 예부터 삼세번, 3진법을 써 오던 나라다. 012012012012.... 3진법엔 3이 없다? 왜? 아까 2진법엔 2가 있었나? 지도엔 ‘나’가 있나? 지도무난? 우리네 살아가는 세상 지도엔 여러 사람이 사는 것이지 자기 자신은 필요없다. 그렇게 지도처럼 산다면 다툼이 없겠다. 그런데 실제 우리네 삶에서 ‘나’를 너무 세우지. 서로 ‘나’를 내세우면 삶이란 살기 퍽퍽하지. 그 삶은 2를 위주로 한 삶이다. 



  우리 삶속에 잠이 필요하다. 잠이란 0과 비슷하다 했으니 보이지도 잘 않으니 주장하거나 욕심이 없다. 무위(無爲)다. 또 보자 0이 도(道)라면 1은 덕(德)이다. 그러면 노자의 도덕경은 ‘01’의 경(經)? 0이 진리요 지혜라면 1은 사랑이다. 무위의 삶, 진리를 따르는 지혜의 삶이 곧 살면서 잘 자는 것과 같다. 



  또 잠이 0이라면 ‘제로존’쯤 되겠다. 자면서 꾸는 꿈이 1을 향해가는 것이라면 제로존이론이 자면서 꿈을 꾸면서 만들어졌다는 말이 우연은 아닐 듯 싶다. 오늘도 잠을 잘 자자. 그리고 자면서 꿈꾸고 살면서도 각성을 꿈을 꾸자. 그것도 끝나지 않는 0과 1의 꿈을. 0과 1의 꿈은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고 이 한자를 숫자로 보면 “101...101”으로 꼬리를 무는 완전한 원임을 알겠다.

덧글 ()

조석현  / 2012-08-21-23:34 삭제
꽤 오래전에 써 놓았던 것인데....생소하고 난해해 보이는데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익숙치 않는 뚱딴지 같은 얘기라서라고 자위해보네. 우리말은 우리한글은 우리가 아는 바 보다 훨씬 철학적이네(우리 고유의 우주관 천지인 우주관이 담겨 있고) 또한 우리가 셈하는 숫자만큼 철학을 능가하는 철학(상수철학)도 없네. 수 자체가 온 우주를 표현하고 진리를 말하는데... 천부경을 계속 연구하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고 주역도 여기서 발생되었음도.....그런데 0과 1을 알기가 제일 어려워....무극,태극 또는 하나님으로 불리웠고....열님까지 커지면 다시 무로 돌아가고 다시 한이 태어나니....사실 알고 알고 깨닫고 깨달으면 모두가 하나란 사실로 귀착되니...또 뱅뱅 도는 원이구먼...지구도 둥글고 세상도 둥그니 둥근 모습이 바로 0이면서 1이네. 우리도 지천명에 꽤 둥글어지지 않았나. 구부릴수록 조금 더 멀리 굴러가겠지. 힘이 좀 들면서.
박형상  / 2012-09-02-22:53 삭제
ㅡ몇번 들어올 때 마다 읽어보는데, ....영 0 같네 그려.....다시 1번 시작해보지만.... 다시 0 으로 돌아오네 그려....

뱅뱅 도네그려....어쨌든 둥글어지면 좋겟지....써둔 글 있으면 더 올려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