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정약용과 '불식,不識'
ㅡ정약용이 '알지 못한 것','모른 것'
ㅡ정약용은 도대체 무엇을 몰랐다는 것일까?
-정약용의 詩에 "불식,不識"이 있다.
"알지 못함" 또는 "모르겠네" 정도이겠다.
한국고전번역원 DB에는 "알지 못함(不識)"으로,
정민 교수는 "무지(不識)"로 옮기고 있다.
정약용은 도대체 무엇을 알지못하고 모른다는 것일까?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에 유배가서 쓴 詩이다.
그 유배지에 도착하여 그해 6월경에 '독립(獨立)'을 썼고,
바로 연이어 '불식(不識)'을 썼다.
(한편 불교의 禪語로 "불식,不識"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있는지없는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겸손한 뉘앙스로 "모르겠다"는 것이다.
'양 무제'의 질문에 '달마대사'가 그렇게 "불식"으로 대답했다한다)
정약용의 詩 '불식'을 옮기고 있는 번역본에 따라 그 뉘앙스 차이도 있다.
'유란(幽蘭)과 쑥(艾)'이 거론되는, 중국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 내용에서
그 '不識'의 유래를 끌어오는 것은 동일하지만,
한국고전번역원원 경우는 "세상이 인재(人材)를 몰라준다"고 하면서 '세상사람의 불식'를 강조한다.
정민 교수 역시 '인재(人材)를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비유로 읽으면서도
"그땐 왜 몰랐을까? 그때의 내 무지가 부끄럽다"로 '정약용의 무지(無知)'로 해설한다.
(한밤중에 잠깨어,정민,2012)
결국 그 번역들의 기본 관점은 '불식,무지'의 객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인재(또는 인재를 알아보는 분별력,인재를 몰라주는 세상)'로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다.
'인재'라기 보다는 그 범위를 더 좁혀 '벗,友(蘭)' 정도의 의미 아닐까?
"벗, 친구의 실상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했고, 몰랐다"는 것으로 본다.
('불식'이란 제목이 붙게 된 것도 그런 뉘앙스인 것 같다.
'마땅히 식별을 해야했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불식햇다'는 의미 아닐까?)
그 詩 '불식' 자체의 시문 내용을 보더라도 그렇다.
'난(蘭)'과 '쑥(艾)이 대비되면서
'호걸풍 호협우(友)'와 '그 반대의 오활한 우유(迂儒)'가 대비되어 있다.
(또 정약용 입장에서 생각해보더라도 그렇다.
이미 객관적으로 공인된 인재라 할 정약용인데, 유배생활 초기에 벌써
'내가 인재인데도 인재 취급을 안해준다'고 굳이 바깥세상에 투덜거렸을 것 같지는 않다)
'난(蘭)'은 '친구,벗(友)'을 상징한다.
'꽃,잎,향기,불로'의 네 박자인데. '난화(花)'쪽 보다는 '난초(草)'라는 의견도 있다.
그 꽃말이 ‘두터운 우정’이듯,
'蘭友·蘭兄·蘭客·蘭交·蘭契·金蘭之交, 지란지교' 등은
모두 ‘굳은 우정’이나 ‘군자의 교제’를 의미한다.
정약용은 진정한 친구를 뜻하는 '난(蘭)'과
거기에 못미치는 '쑥(艾)'을 구별해 냈다.
그러면서 그 자신을 더불어 탓했다.
바보처럼 제대로 분별을 못하고 '불식'했다는 것이다.
그가 그해 1801년에 경상도 장기땅으로 유배까지 가게 된 것도
함께 공부하였던 가까운 친구,동료들부터 그를 물어뜯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한편,정약용은 1795년 가을경에도 '난'을, 즉 '벗'을 찬미하는 詩,
"의란미우인 의蘭 美友人"을 쓴 바도 있다.
주문모 신부사건 여파로 정3품에서 '정6품,금정찰방'으로 좌천되기 직전이었다.
그때도 유독 가까웠던 친구,친지들이 나서서 그를 물고 늘어졌었다.
그 역본을 소개한다.
ㅡ 알지 못함[不識]
ㅡ한국고전번역원
난초를 모르고 쑥이 좋다 하다니 / 不識蘭爲艾
아! 어쩌리 초 나라 대부여 / 嗟嗟楚大夫
세상 인심 다 빤한 것인데 / 世情都已見
지난 일들 왜 그리 어리석었던가 / 往事一何愚
'설관'도 조시(朝市)와 다를 바 없고 / 薛館元朝市
'양원' 역시 세력 찾아 모이던 곳 / 梁園亦勢途
예부터 있던 호걸의협 친구들에 / 古來豪俠友
오활한 선비는 그 축에 못 들지 / 未必在迂儒
[난초를 …… 대부여 : 세상이 인재를 몰라줌.
초(楚)의 삼려 대부(三閭大夫) 굴원(屈原)이 쓴 《이소경(離騷經)》에,
“집집마다 쑥을 허리춤에 가득 차고 다니면서 유란(幽蘭)은 찰 것이 못 된다고 한다네.
[戶服艾以盈腰兮 謂幽蘭其不可佩]" 하였음.
[설관 : 설(薛) 나라 객관(客館). 전하여 규모가 가장 작은 나라의 객관.
(정민 교수 - 전국시대의 '설공 맹상군의 객관'으로 본다)
[양원 : 한(漢) 나라 양 효왕(梁孝王)의 원유(苑囿). 당시 많은 빈객(賓客)들이 모이던 곳.
-무지(不識)
ㅡ정민 교수 역
난초를 몰라보고 쑥만 위하니
초나라 대부여 안쓰럽구나.
세상 정리 모두 보고 난 지금
지난 일 어찌 그리 어리석었나,
설관(薛館)도 원래는 조시(朝市)였었고,
양원(梁園) 또한 세도의 길이었다네
예로부터 호걸풍의 호협한 벗은
오활한 선비 속엔 있지 않았지.
ㅡ의란. 벗을 찬미하는 뜻이다
[의蘭 美友人也]
쭉쭉 뻗은 난초 줄기 / 蘭兮猗兮
저 산비탈 자라는데 / 生彼中陂
아름답다 우리 벗 / 友兮洵美
덕을 지켜 반듯하다 / 秉德不頗
딴 벗 어찌 없으랴만 / 豈無他好
그대 생각 많고말고 / 念子實多
쭉쭉 뻗은 난초 줄기 / 蘭兮猗兮
저 언덕에 자라는데 / 生彼中丘
지금 세상 보통 사람 / 凡今之人
지조 너무 빨리 변해 / 不其疾渝
그대 생각 잊지 못해 / 念子不忘
이내 가슴 안절부절 / 中心是猶
쭉쭉 뻗은 난초 줄기 / 蘭兮猗兮
저 쑥밭에 자라는데 / 生彼蓬蒿
메마르고 거친 포기 / 萎兮蓊兮
어느 누가 손질할꼬 / 誰其薅兮
그대 생각 잊지 못해 / 念子不忘
이내 가슴 애탄다오 / 中心是勞
ㅡ의란 3장 장 6구(猗蘭三章章六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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