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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약용과 '불식(不識),모르겠네'
작성자박형상 작성일2012/08/12 15:30 조회수: 462

ㅡ정약용과 '불식,不識' 

ㅡ정약용이 '알지 못한 것','모른 것'

ㅡ정약용은 도대체 무엇을 몰랐다는 것일까?



 

-정약용의 詩에 "불식,不識"이 있다.

"알지 못함" 또는 "모르겠네" 정도이겠다.



한국고전번역원 DB에는 "알지 못함(不識)"으로, 

정민 교수는 "무지(不識)"로 옮기고 있다.

정약용은 도대체 무엇을 알지못하고 모른다는 것일까?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에 유배가서 쓴 詩이다.

그 유배지에 도착하여 그해 6월경에 '독립(獨立)'을 썼고, 

바로 연이어 '불식(不識)'을 썼다.



 (한편 불교의 禪語로 "불식,不識"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있는지없는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겸손한 뉘앙스로 "모르겠다"는 것이다.

'양 무제'의 질문에 '달마대사'가 그렇게 "불식"으로 대답했다한다)



 정약용의 詩 '불식'을 옮기고 있는 번역본에 따라 그 뉘앙스 차이도 있다.

'유란(幽蘭)과 쑥(艾)'이 거론되는, 중국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 내용에서 

그 '不識'의 유래를 끌어오는 것은 동일하지만,



 한국고전번역원원 경우는 "세상이 인재(人材)를 몰라준다"고 하면서 '세상사람의 불식'를 강조한다.

정민 교수 역시 '인재(人材)를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비유로 읽으면서도

"그땐 왜 몰랐을까? 그때의 내 무지가 부끄럽다"로 '정약용의 무지(無知)'로 해설한다.

(한밤중에 잠깨어,정민,2012)



 결국 그 번역들의 기본 관점은 '불식,무지'의 객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인재(또는 인재를 알아보는 분별력,인재를 몰라주는 세상)'로 보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다.

'인재'라기 보다는 그 범위를 더 좁혀 '벗,友(蘭)' 정도의 의미 아닐까?

"벗, 친구의 실상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했고, 몰랐다"는 것으로 본다.

('불식'이란 제목이 붙게 된 것도 그런 뉘앙스인 것 같다.

'마땅히 식별을 해야했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불식햇다'는 의미 아닐까?)



그 詩 '불식' 자체의 시문 내용을 보더라도 그렇다.

'난(蘭)'과 '쑥(艾)이 대비되면서

'호걸풍 호협우(友)'와 '그 반대의 오활한 우유(迂儒)'가 대비되어 있다.



(또 정약용 입장에서 생각해보더라도 그렇다. 

이미 객관적으로 공인된 인재라 할 정약용인데, 유배생활 초기에 벌써

'내가 인재인데도 인재 취급을 안해준다'고 굳이 바깥세상에 투덜거렸을 것 같지는 않다)



'난(蘭)'은 '친구,벗(友)'을 상징한다. 

'꽃,잎,향기,불로'의 네 박자인데. '난화(花)'쪽 보다는 '난초(草)'라는 의견도 있다.

그 꽃말이 ‘두터운 우정’이듯, 

'蘭友·蘭兄·蘭客·蘭交·蘭契·金蘭之交, 지란지교' 등은 

모두 ‘굳은 우정’이나 ‘군자의 교제’를 의미한다.



정약용은 진정한 친구를 뜻하는 '난(蘭)'과 

거기에 못미치는 '쑥(艾)'을 구별해 냈다.

그러면서 그 자신을 더불어 탓했다. 

바보처럼 제대로 분별을 못하고 '불식'했다는 것이다.

그가 그해 1801년에 경상도 장기땅으로 유배까지 가게 된 것도

함께 공부하였던 가까운 친구,동료들부터 그를 물어뜯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한편,정약용은 1795년 가을경에도 '난'을, 즉 '벗'을 찬미하는 詩, 

"의란미우인 의蘭 美友人"을 쓴 바도 있다.

주문모 신부사건 여파로 정3품에서 '정6품,금정찰방'으로 좌천되기 직전이었다. 

그때도 유독 가까웠던 친구,친지들이 나서서 그를 물고 늘어졌었다.



그 역본을 소개한다.



ㅡ 알지 못함[不識]

                         ㅡ한국고전번역원

난초를 모르고 쑥이 좋다 하다니 / 不識蘭爲艾

아! 어쩌리 초 나라 대부여 / 嗟嗟楚大夫

세상 인심 다 빤한 것인데 / 世情都已見

지난 일들 왜 그리 어리석었던가 / 往事一何愚

'설관'도 조시(朝市)와 다를 바 없고 / 薛館元朝市

'양원' 역시 세력 찾아 모이던 곳 / 梁園亦勢途

예부터 있던 호걸의협 친구들에 / 古來豪俠友

오활한 선비는 그 축에 못 들지 / 未必在迂儒



[난초를 …… 대부여 : 세상이 인재를 몰라줌. 

초(楚)의 삼려 대부(三閭大夫) 굴원(屈原)이 쓴 《이소경(離騷經)》에,

 “집집마다 쑥을 허리춤에 가득 차고 다니면서 유란(幽蘭)은 찰 것이 못 된다고 한다네.

[戶服艾以盈腰兮 謂幽蘭其不可佩]" 하였음.



[설관 : 설(薛) 나라 객관(客館). 전하여 규모가 가장 작은 나라의 객관.      

(정민 교수 - 전국시대의 '설공 맹상군의 객관'으로 본다)



[양원 : 한(漢) 나라 양 효왕(梁孝王)의 원유(苑囿). 당시 많은 빈객(賓客)들이 모이던 곳.





-무지(不識) 

               ㅡ정민 교수 역

난초를 몰라보고 쑥만 위하니

초나라 대부여 안쓰럽구나.

세상 정리 모두 보고 난 지금

지난 일 어찌 그리 어리석었나,

설관(薛館)도 원래는 조시(朝市)였었고,

양원(梁園) 또한 세도의 길이었다네

예로부터 호걸풍의 호협한 벗은

오활한 선비 속엔 있지 않았지.





ㅡ의란. 벗을 찬미하는 뜻이다

[의蘭 美友人也]



쭉쭉 뻗은 난초 줄기 / 蘭兮猗兮

저 산비탈 자라는데 / 生彼中陂

아름답다 우리 벗 / 友兮洵美

덕을 지켜 반듯하다 / 秉德不頗

딴 벗 어찌 없으랴만 / 豈無他好

그대 생각 많고말고 / 念子實多



쭉쭉 뻗은 난초 줄기 / 蘭兮猗兮

저 언덕에 자라는데 / 生彼中丘

지금 세상 보통 사람 / 凡今之人

지조 너무 빨리 변해 / 不其疾渝

그대 생각 잊지 못해 / 念子不忘

이내 가슴 안절부절 / 中心是猶



쭉쭉 뻗은 난초 줄기 / 蘭兮猗兮

저 쑥밭에 자라는데 / 生彼蓬蒿

메마르고 거친 포기 / 萎兮蓊兮

어느 누가 손질할꼬 / 誰其薅兮

그대 생각 잊지 못해 / 念子不忘

이내 가슴 애탄다오 / 中心是勞



          ㅡ의란 3장 장 6구(猗蘭三章章六句)

덧글 ()

조석현  / 2012-08-12-16:50 삭제
난초와 쑥을 몰랐고 난초는 향기롭고 쑥은 이로우니 못된 친구도... 허허 지나고 보면 약이 될 수도 있네. 세상엔 쑥도 난초도 다 필요하니 쑥을 쑥으로 알고 난초를 난초로 알면 그 뿐....
박형상  / 2012-08-12-17:49 삭제
ㅡ친구 ㅡ전적으로 동의하네 !

ㅡ그런데 그 시절 정약용 선생은 꽤 까다로운 기준으로 살앗던 것 같다. 

이른바 그 기준에 미달한 악당들은 그 뒤로도 아예 상종을 안 해버린 것 같아..

ㅡ그 점만큼은 <정약용>이 존경했던 중국의 <소동파>와 크게 다른 부분. 

<소동파>는 자신을 괴롭히고 유배를 보냇던 정적,<반대파 신법당, 왕안석>을 나중에 찾아뵙고 일종의 화해를 하는 반면에, 우리 <정약용> 선생은 자신을 유배보내고 그 해배에도 반대햇던 <서용보>라는 인물과 '영영 단절의 평행선'.

 <정약용>이 18년유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오자 마침 그 인근에 살고있던 <서용보>가 먼저 정약용에게 일종의 화해 메세지를 보냈어도 정약용은 답신없이 잘라 '노 코멘트'해버리지.

ㅡ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고, <소동파,정약용>두 사람 입장을 단순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같은 천재급이지만, <소동파>는 워낙에 낙천적 호방한 성격이고, <정약용>은 꼼꼼 치밀 착실한 모범생 선비...) 

ㅡ그래서 <소동파>경우는 정적이라할 <왕안석>과 화해한 후 다시 화려하게 컴백하는 반면에 

우리 <정약용> 경우는 그 <서용보>가 또 다시 나서서 정약용의 정계복귀의 길을 꽉 틀어 막아버리지.. <서용보>는 나중에 '영의정'까지 한 사람.



ㅡ그래도 또다른 한편으로 그런 부분은 돋보이는 것 같아

<정약용>이 아무에게나 함부로 고개를 안 숙이며, 그렇게 원칙과 지조를 계속 지켰었기 때문에 ( 그 길어지는 유배기간에도 불구하고 권력실세나 그런 친구들에게 애걸,읍소,하소연하는 편지 한장 안 보내고 버틴 자존심!과 오기!)

그래서 오늘날 후대 사람들의 정신적 사표가 된 것 아니겠어...

한쪽을 희생하고 다른 한쪽을 확실하게 얻어낸 인생이라고나 할까

ㅡ뭐 어쨌거나 우리들 현실로 되돌아와보면, 우리들 같은 보통 사람들, 범인들 입장이 문제인데.......,

나도 석현 친구 말대로 <난쑥겸행><한손에 난, 한손에 쑥>이면 좋을 것 같아 ^^ ^^...
송기병  / 2012-08-14-10:01 삭제
《Re》박형상 님 ,

박 변!   윗글에 의한다면 난 '소동파'보다는 '정약용'쪽에 가깝네. 즉 "남자는 자존심 빼면 시체"라는 주의지...

허나 나같은 사람이야 雜草처럼 사는 '民草'인고로 이래도 저래도 그만이지만,

자네같은 인재는 <난쑥겸행>보다는 '소동파'쪽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만...
박령상  / 2012-08-14-10:43 삭제
ㅡ고맙네....그런데 <소동파>든 <정약용>이든 .....넘 훌륭한 분들이라서...아예 근접 자체가 어려울 터이고..

ㅡ문제는 .... 우리들 범인들은 ....늘 엉거주춤한다는 것,.....저번에 <아웃사이더>라는 말도 나왓지만...

이쪽 저쪽 안팎을 기웃거리고....마른 자리 진 자리 살펴보다가.....두 다리가 엉거주춤 어쩡쩡하게 걸쳐지고만다는 것......그게 비극인 것 같아....자꾸만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란 생각이 드네그려...

ㅡ늘 감사하고...

ㅡ정말 <不識, 불식>.......모르겟다네....
김원배  / 2012-08-14-11:55 삭제
난이 쑥이 될 수도 없고 쑥이 난이 될 수도 없겠지만

사람인지라 쑥같은 난,난같은 쑥도 있을 터,

각 자의 쓰임새가 다르기에 효용가치가 각 기 다를 것 같다.

내가  난이라 생각한들 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쑥인 채로 살아 가야하지 않을까?(그 반대의 경우도...)
박형상  / 2012-08-14-12:13 삭제
ㅡ원배!...........'명언, 명판단'이네그려.....

ㅡ그나마 정약용 정도되니까,... '난과 쑥을 식별하네마네' 하는 것이고....."난"처럼 고고하게 살아가는 자존심과 오기로 버틴 것이고, ........우리들이야 <난>과 <쑥>의 장점과 효용성을 살려 살아가야겠지...

ㅡ정약용 선생도 그때 원배를 만나 원배한테서 조언을 받아두었더라면 더 편히 사셧을 터인데....

ㅡ그런데 당시 정약용은 그 가까왓던 친구들을 <악인> <악당>이라 표현할 정도엿는데...그렇게 가까운 친구들한테 내내 조직적으로 시달린 괴로움과 충격이 아주 컸던 것 같아...그제나 이제나 늘 어려운 세상...
조석현  / 2012-08-15-23:15 삭제
나를 난이라는데 세상이 쑥이라면 쑥인가? 내가 난인지 쑥인지 모르면 난이 쑥이 되고 쑥이 난이 되는가? 숙맥이 난쑥불변이구먼. 내가 난이든 쑥이든 난같은 쑥이든 쑥같은 난이든...허어 나를 알기가 세상 알기만큼 어려우니 나만 알아도 절반은 깨닫네. 자신을 모르고 남을 살펴 판단하니 문제 아닌가? 지천명에 천명을 알기 어려우니 난제일세. 난인들 쑥인들 어쩐가? 난이 낫고 쑥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제고...난은 난의 천명을 받은 거요 쑥은 쑥의 천명을 받았으니...그를 모르고 그야말로 엉거주춤이 문제일 수도 있겠네,,,난쑥겸행이든 남쑥일행이든 선택의 문제인데...글쎄 무엇이 옳은 지... 이 말부터 문제네. 소동파는 소동파대로 옳았고 다산은 다산대로 옳았지 않을까?
박형상  / 2012-08-16-00:11 삭제
ㅡ석현,원배,기병 친구들 댓글에 감사하네...그 내공들에 기회가 되는대로 받들어 모셔야 할 것 같습니다.

ㅡ그런데 좀 나누어서 생각해볼 부분이....

ㅡ우선은 '그때 그 상황에서 정약용의 관점은 여하튼간에 그랫었다'는 부분이 먼저 있고,

ㅡ다음은 '그때 그런 정약용의 관점이 과연 합당 적절햇을까'라는 부분이 있고,

ㅡ다시 우리들 현실로 돌아와, '정약용과 상관없이, 난과 쑥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라는 부분.

ㅡ결국 우리들 문제에 있어서는 <석현,기병,원배>의 의견 모두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박형상  / 2012-08-16-00:34 삭제
ㅡ제가 이 글을 따로 정리해본 것은 "그때 그 상황에서의 정약용은 그랫엇다"는 부분이 먼저엿습니다.

ㅡ정약용이 평온한 상황에서 이른바 <난쑥일반론, 난쑥식별론>을 불쑥 또는 건방지게 꺼낸 것이 아니라,

   그가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시절 이래 경상도 장기땅으로 유배를 갈 때까지 워낙에 가까운 친구,친지들한테 많은 시달림을 당햇기에....유배지에 도착하자마자 그 자신의 부족함을 후회하면서 ,,,그런 특수한 상황에 처하여.....서러움과 울분에 복받혀....이른바 <난쑥식별론>을 개진한 것 같습니다.

ㅡ이제 문제는 우리들 현실이겟지요..

그 때와 장소, 상황이 다르고, 보통사람들, 일상인에 불과한 우리들은 과연 <난과 쑥>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예전의 정약용의 관점에서 혹 어떤 시사를 받을 수 잇겠는가?인데.....앞서 말한대로 <석현,기병,원배 친구들> 관점 모두가 ....그 나름대로 우리들에게 보탬이 되는 것 같습니다...물론 <석현과 원배> <석현과 기병> 친구간에는 얼마간 시선 차이가 있는데,.....<벗(友)의 소중함>과 ,<난벗,쑥벗의 동행길><어찌됐든 난쑥은 구별되고, 각자의 가치가 따로 있다는 점><어떤 상황과 흐름 속에서 우리들 선택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점>.......등에는 서로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ㅡ올 가을은 너무 많은 더위, 너무 많은 비를 먼저 보내주면서 시작하는 것 같아...
송기병  / 2012-08-16-13:54 삭제
'다산이 왜 유배지에서 이빨을 갈았을까'를 생각해 봐야겠지...

진실을 호도하고 친구를 음해하는 넘들이 있었겠지, 요즘도 그러한데 그땐 오죽 했겠나? 

나도 같은 경우를 당해봐서 아네만, 그런 넘들은 능지처참을 시켜야겠지(전두환이보다 더...)  



- 박변 말마따나 올 여름이 '지구가 얼마나 병들었는지?'를 보여 주는듯 하구만 그랴!

그래서인지 다가오는 가을이 그 어느 해보다 기대가 되기도 하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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