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 알려드립니다.
  • 본 사이트는 대한민국 저작권법을 준수합니다.
  • 회원은 공공질서나 미풍양속에 위배되는 내용과 타인의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 및 기타 권리 를 침해하는 내용물에 대하여는 등록할 수 없으며, 개인정보보호법에 의거하여 주민번호, 휴대폰번호, 집주소, 혈액형, 직업 등의 게시나 등록을 금지합니다.
  • 만일 위와 같은 내용의 게시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게시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제목

정약용과 '삼장사'(1)
작성자박형상 이메일[메일보내기] 작성일2012/07/19 08:46 조회수: 367

ㅡ정약용과 '삼장사'(1)







-정약용은 18세이던 1779년에 아내 홍씨와 함께 '장인 홍화보'가 절도사로 근무하는 진주에 가게된다.

거기서  마침 '진주 의기사' 사당을 보수하던 장인의 부탁으로  "진주 의기사기(晉州義妓祠記)"를  짓게된다.

그 記文에 "..왜장 한 명을 죽인 것이 삼장사(三壯士)의 치욕을 씻기에는 부족하다고 하겠으나"라 하면서

'삼장사'를 언급하였다.

그리고 그 기문에 덧붙인 "촉석회고" 시에는 '壬辰之難。三壯士殉節於此'라고 부기해놓고 있다.



1795년 봄,34세 때에도"送이호군격 爲진양절도사"라는 시에서 '진주 삼장사'를 언급하였다.

또 '목민심서, 병전육조'에서도 '촉석루下삼장사'를 말하고 있다.

*金千鎰,崔慶會,黃進等。臨死作詩曰。

矗石樓下三壯士。一杯笑指長江水。長江萬古流滔滔。波不竭兮魂不死。

其後 申維翰作詩曰。天地報君三壯士。江山留客一高樓。



 그런데 다산 선생의 詩를 번역한 '한국고전번역원 각주' 태도는 여러모로 미흡 모호하다,

'진주 삼장사'에 관련하여 '본디 삼장사'가 따로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본디 김성일(金誠一)ㆍ조종도(趙宗道)ㆍ이노(李魯)를 가리키는데, 

다산은 선조 26년(1593) 6월 진주성에서 왜적과 대항하여 9주야를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은 

김천일(金千鎰)ㆍ최경회(崔慶會)ㆍ'황진(黃進)-또는 고종후'을 가리킨 것이다" 라고만 말하였다.



 이런 입장에 있는 일부 견해는 영남에서 말하는 삼장사는 '김성일,조종도,이노'이고 

호남에서 말하는 삼장사는 '김천일,최경회,황진(고종후)'라고 줄여 구별해버린다.



한편,진주 촉석루에는 영남 유림이 1963년에 '삼장사추모계' 명의로 세운 '촉석루중삼장사 기실비"가 있다.

여기에는 '김성일,조종도.이노', 영남 선비 세 분를 '삼장사'로 지칭하고 있다.

그러니 '1593년 진주성 2차 싸움에서 순절한 세 분'을 응당 '진주 삼장사'로 지칭할 것이라는 

역사적 배경지식을 가지고 진주 촉석루를 방문하는 일반인들로서는 크나큰 혼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정리해본다.

우선, 다산 정약용의 입장을 살펴본다.

젊은 정약용의 글에 등장하는 '삼장사'는 '순절 삼장사'라는 제한적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계사년,'진주성 2차싸움에서 순사한 세 분'을 '진주 삼장사'로 지칭하였을 뿐이다. 

(정약용의 장인인 당시 진양절도사 홍화보의 詩도 그렇게 되어있다)



정약용의 심중에는 이른바 '영남 삼장사'는 아예 없었다. 

나중에 '목민심서'에 가서도 (후일 영호남간에 논란될 '삼장사' 시를 두고) 

'김천일,최경회,황진' 세 사람의 '임사작시(臨死作詩)'로 소개하고 있다.



한편 1803년경에 유배생활을 하면서 진주 촉석루에 가보았던,

진주 유배객 '김려(1766~1822)'의 글에도 '순절한 삼장사'가 나올 뿐이다.



그런데 '삼장사 논란'에서 먼저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른바 영남 삼장사중의 '김성일 선생'은 진주성 2차 싸움 이전에 이미 병사하였다는 사정이다. 

나머지 '조종도,이노' 두 분도 진주성 2차 싸움에는 직접 참여한 바가 없다는 점이다.

'이노' 같은 분은 임진난에 관련한 '선무원종공신' 명단에도 아예 없었다.

(단지 그 200년후 순조대에 이르러서야 추증이 되고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호남 유림간에 왜 '진주 삼장사' 논란이 벌어졌던(벌어지고있는) 것일까?

영남의 일부 역사교수들까지 가세하여 왜 '영남 삼장사'를 고집하는 것일까?



 영남유림측 주장은 '촉석루中삼장사'라는 詩를 김성일 선생이 먼저 지었다는 이유때문이다. 

'삼장사'란 용어와 詩文의 연고권을 내세운 것이다.

또 '이노'가 쓴 '용사일기'에도 그 '촉석루中삼장사' 詩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다시 살핀다.

해당기록의 초간본이 아닌,재간본에 부록형식으로 병기,추기되었다는 '서지적 논란'은 별론으로 하고, 

설령 그 詩를 학봉 김성일 선생이 먼저 썼다한들, 

진주성 2차싸움에 참여하지도 아니했고, 순사한 바도 없는 그 세 분을 두고서 

'촉석루 삼장사'로 모셔 부르기는 뭔가 부족하고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일 아닐까?



그런 詩를 짓게된 연유를 들어보아도 역시 그렇다.

임진년,진주성 1차 싸움도 일어나기 전에 '김성일,조종도,이노' 세 분이 촉석루 안에 모였는데,

'조종도'가 시국을 개탄하면서 '물에 빠져 자살하자'고 제안하자, 

이에 '김성일'이 이를 만류하면서 '후일을 기약하자'고 그런 '삼장사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학봉집 부록,연보에 실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생이 처음 진주에 이르렀을 때, 목사 이경(李璥)은 산골짜기로 들어가 숨어 있었으며, 

성은 텅 비어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고, 오직 강물만 출렁이며 흐르고 있었다. 

선생은 '조종도, 이노'와 함께 눈을 들어 산하(山河)를 바라보다가 분통함을 참지 못하였다. 

'조종도'가 손을 잡고 함께 강으로 뛰어들려고 하자, 

선생이 웃으면서 이르기를, '한번 죽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죽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고, 

서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고나서 학봉 선생이 '삼장사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코믹하다할 정도로 그 사연이 미미하고 기대에 못 미친다. 

그럼에도 '촉석루中삼장사 기실비'만을 진주 촉석루에 세워두고서 

그 세 분만을 떼어내 '진주 삼장사'라 따로 기릴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이 '삼장사'를 존숭 추모함은 그런 연유로 지어진 '삼장사'라는 문학적 시문 때문인가? 

그 진주성 2차 싸움에서 몸바쳐 순절했던 역사적 비극 때문인가?

노블레스 오블레쥬, 싸우지 않고 죽지 않했다면 '삼장사'라 감히 칭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詩文만을 남기고 간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를 생각할 수 있는가?



그래도 '영남 삼장사'라야만 옳고, '촉석루中삼장사'를 굳이 따져야한다면 

아주 쉽고 편하고 적확한 방법이 있겠다.

'촉석루記文삼장사'와 '촉석루殉節삼장사'로 구별하면 될 것이다.



정약용 선생이 '촉석루下삼장사'라 표현한 만큼 

'촉석루 안에서 詩를 읊은 분들'과 '촉석루 아래로 순사한 분들'을

'촉석루中삼장사'와 '촉석루下삼장사'로 구별해주면 될 것이다.



(다산 선생이 '촉석루下..'라는 표현을 하게된 이유가 혹 거기에 있었을지도 모르겟다.

장인이 먼저 진양절도사였다가 나중에는 그의 아버지 정재원이 '진주 목사'로 가게되어, 

다산 선생도 그 나름대로 진주 사정이나 '진주 삼장사'에 정통하게 될만한  입장이다)



몇해전 진주 시의원 한분이 '진주 삼장사'에 관한 역사의식의 혼돈과 불편함을 지적하면서 

'진주 삼장사비를 따로 세우자'고 용기있게 제안한 바도 있었다.



백번 양보하여 학봉선생이 지었다는 '촉석루中삼장사'詩에 어떤 가치가 있다하더라도

순절한 세 분, '진주 삼장사'와 혼동을 피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보다 적절한 위치에

'학봉선생 촉석루 시비'정도라면 족하지 않겠는가?

학봉선생 문집과 연보에도 '촉석루中삼장사'가 아닌, '촉석루'라는 제목으로 되어있을 뿐이다.

덧글 ()

송기병  / 2012-07-19-09:30 삭제
박 변!

엊그제 회동시 새로운 소식 들어서 반가웠고, 좋은 결과 있길 바라겠네.

박변이 언급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없는 사람은, 우리마냥 기냥 '민초'로만 남아야 한다 생각하네.
나웅인  / 2012-07-19-09:48 삭제
항상 고맙게 생각하며 공부하고 있네.

다음에 축석루에가면 눈여겨 봐야것네.
고용호  / 2012-07-19-10:41 삭제
잘읽었네

우리 고향에서는 고경명, 고종후, 고인후 삼부자를 삼장사라고 하기도 한다네...

물론 형상이가 언급한 삼장사와는 다르지만.
김원배  / 2012-07-19-13:21 삭제
잘 알겠네! 논개를 기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삼장사를 기억하자, 특히 순절한 삼장사를.....

           '촉석루記文삼장사' : 김성일(金誠一)ㆍ조종도(趙宗道)ㆍ이노(李魯)

           '촉석루殉節삼장사' : 김천일(金千鎰)ㆍ최경회(崔慶會)ㆍ황진(黃進)
박형상  / 2012-07-19-14:46 삭제
ㅡ아 그 부분은 논란되고 있는 부분인데, 정약용은 '황진'으로 그렇게 본다는 것이고, 대체적으로 '고종후'를 넣는 경우가 많고, 화순의 '양산숙'을 넣는 소수견해도 있는 것 같아, 우리 장흥에도 고씨들이 있어 '김천일,최경회,고종후 삼장사'를 모시고 있는 제각이 있는 것 같던데....

ㅡ읽어들 주시어 감사하네..^^^^
이용균  / 2012-07-19-16:47 삭제
다산과의 사랑에 빠져든 형상이의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만 같네...

그리도 횡량한 유배지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않아 위대한 세계인이 된 정약용...



처가인 강진 백운동 또한, 다산의 이야기가 적지않게 배어 있는 곳이라네...

언제인가 장흥가는 길,다산이 그리우면 한번 들려보소....

,다산이 이름을 붙여준 돌거북,다조,술잔을 띄웠던 연못그 안에 석가산...

잠시 쉬었다면 언덕위 정선대에 올라가 다산선생의 술 한잔,마음 한잔 받아보고 오소...
허주회  / 2012-07-20-11:52 삭제
삼장사는 호남 영남을 가리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그쪽 사람들은  진짜 삼장사가 호남인이라는 이유로 바꿔치기한건가?   거참 웃기는 놈들이시..
박형상  / 2012-07-20-14:57 삭제
ㅡ용균이 오랫만이네..처가집이 강진 백운동이라고? 부럽네...그 마을 언저리까지 갓다가 시간에 쫒겨 그냥 되돌아 온 적이 있네...거기 언덕위 <정선대>는 처음 들어보네....

'술 한 바가지 마음 한 바가지 정 한바가지' 조오옷치... 

ㅡ주회도 오랫만이다...제주도냐?.......병표는 전혀 연락이 안되던데....

그 애들은 외려 '진짜 삼장사'는 자기들이라고 우겨대니 더 웃기는 일인데...명색이 거기 '역사학자'란 분들이 제일 웃기는 놈들 같아.....
이용균  / 2012-07-20-18:06 삭제
停仙臺는신선도 쉬어갈 정도로 운치가 좋다는 돈대로서

백운동 경내에 기암괴석의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곳에 세워진 정자라네.

가만이 앉아보면 월출산의 기봉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처 고모님(일명 백운동아씨)말씀을 들어보면 어릴때 이곳에서는

강진고을에 높은 분이 부임하면 무희들을 불러다가 춤을 추이고,만돌린을 켜는 사람도 신나보였다하네,

달밝은 날에는 피리부는 사람을 불러 피리를 불게하고,돌을 치는(?)사람도 불렀다하니 마지막 조선 선비들의

안쓰러운 낭만을 생각케 해 주더만...





지금은 본채가 완전 복원이 되지않아 퇴락한 느낌도 나지만, 정선대는 그런대로 정자의 모습을 갗추고 있어

한번 올라갈만 하다네...
허주회  / 2012-07-20-18:34 삭제
난 제주도에서 칩거하고 있고, 병표는 광주에서 은거하고 있는데 연초에 제주도에 다녀갔다. 

글 잘 읽고 있으니 계속 좋은 글 많이 부탁한다.

연번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파일
12 ㅡ조선의 차문화, '미공개 편지'부분에 관련하여 (5) 박형상 2012/10/30 291  
11 ㅡ"다반향초"에 관한 또 하나의 의문 (25) 박형상 2012/10/28 347  
10 ㅡ정약용과 '황엽사' (8) 박형상 2012/10/13 343  
9 정약용과 '떨어진 연꽃'(2) (1) 박형상 2012/09/13 317  
8 정약용과 '시들은 연잎(1)' (4) 박형상 2012/09/12 331  
7 정약용과 '불식(不識),모르겠네' (10) 박형상 2012/08/12 461  
6 정약용과 '시참,수조가' (4) 박형상 2012/07/31 340  
5 정약용에게,'그가 왔다" (5) 박형상 2012/07/24 331  
4 현재 보고 있는 게시글정약용과 '삼장사'(1) (10) 박형상 2012/07/19 367  
3 정약용과 '이학규' (8) 박형상 2012/07/14 346  
2    답변글[RE]Re..정약용과 '이학규' (0) 박형상 2012/07/14 260  
1 정약용과 '여마동' (7) 박형상 2012/07/10 344  

맨처음이전 5페이지123다음 5페이지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