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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소주,1960년대의 국민주였다.
작성자김원배 이메일[메일보내기] 작성일2011/07/27 09:25 조회수: 416

196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대왕'표 청주와 함께 소주를 생산했던
삼학소주는 당시 전국 소주시장을 석권했다.



1947년 고(故) 김상두씨가 목포에서 창업한 삼학양조의 삼학소주는
한 때 기업 순위 61위로 한국 100대 기업에 들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막걸리보다 더 인기있는 국민주의 대명사로 떠올랐던 삼학소주는
시장 점유율이 60~70%에 이를 정도로 승승장구했지만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서 비운을 맞는다.



목포 출신 김대중 후보가 박정희 후보와 맞서 아쉽게 고배를 마신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7개월 후에 '삼학양조 납세 증지' 위조 사건에 휘말린 게 몰락의 서막이었다.
삼학양조가 국세청으로부터 받아 소주병에 붙이는 납세 증지를 위조해 세금을 포탈했다는 것.
이 사건으로 사장이 구속되고 주세와 법인세 등을 체납해 1973년 9월 목포와 서울 영등포에 있던 주조시설이
공매처분되면서 공중분해 됐다.



당시 삼학양조 관계자와 많은 호남 사람들은 `김대중 후보에게 자금을 댔다는 괘씸죄로
세무조사를 받고 결국 사라지게 된 것이 틀림없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충격 속에 20일 목포역 분향소를 찾은 70~80대 노인들은
사라진 삼학소주를 떠올리며 '그때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상조(78.목포시) 할아버지는 "대왕표 청주와 함께 삼학소주를 즐겨 마셨다.
지금도 삼학소주가 생각날 때가 많다"며 "삼학소주가 정권의 미움을 받아 세무조사를 받고
사라진 것이 틀림없다고들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삼학양조가 김 전 대통령에게 실제로 정치자금을 제공했는지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삼학소주를 기억하는 김 전 대통령 추모객들 가운데는 삼학소주의 운명이 김 전 대통령과 어느 정도
연관됐을 것이라고 지금도 믿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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