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고 3학년 자율삭발 화제
17일 오전 광주제일고 3학년 6반 교실.
‘까까머리’ 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수업을 경청하고 있었다. 교실 분위기도 타임머신을 타고 ‘상고 머리’가 유행했던 1970년대로 되돌아 온 듯했다.
광주일고 3학년생 전원은 지난달 삭발을 결행했다. 휴대전화도 담임선생님에게 자진 반납했다. 3월이 되자 1, 2학년 후배들도 하나 둘씩 선배들의 삭발에 동참했다.
가뜩이나 외모에 관심이 많은 10대 청소년 전체가 삭발을 한 것은 전국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든 진풍경이다.
두발 단속을 했다가 청소년 인권 시비가 벌어지기 일쑤인 요즘 세태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다.
특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TV드라마 ‘꽃보다 남자’ 등을 통해 ‘장발’이 청소년들의 유행 아이템이 된 요즘 광주일고생들의 삭발 투혼은 학부모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광주일고 3학년생을 둔 학부모 조모씨는 “올해 고 3에 올라간 아들이 어느 날 휴대폰을 스스로 해지하고,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광주일고생들의 삭발 결의는 올 2월 ‘머리와 복장을 단정히 했으면 한다’는 이 학교 김병채 교장의 조언에서 시작됐다.
이 말을 들은 학생회장 박은총군은 다음날 ‘까까머리’를 하고 등교했다. 폭소가 터지고, 놀려대는 친구가 많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까까머리’는 점점 늘어났다.
2월 말이 되자, 머리카락을 기른 학생이 오히려 유행에 뒤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까까머리’로 정신을 재 무장하자는 학생들의 글들이 올라왔다.
물론 교문 앞 두발 단속 같은 건 없었다.
박은총군은 “머리 손질시간 등이 줄어들어 하루에 1시간 이상은 절약된다. 수행을 하는 스님들이 삭발을 하는 이유를 알겠다”며 ‘까까머리’ 애찬론을 펼쳤다.
사실 광주일고는 몇 년 전만 해도 면학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았다.
‘실력 광주’의 대표 주자였던 광주일고는 학력이 떨어지면서 한때 ‘천덕꾸러기 공립고교’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고등학교 평가의 잣대가 되고 있는 서울대 합격생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해도 있었다.
이는 재학생들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신들조차 광주일고에 배치됐을 때 한숨부터 내쉬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부진을 씻기 위한 광주일고 변화의 중심에는 교사들의 열정과 동문 선배들의 ‘모교 무한사랑’이 숨겨져 있다.
특히 평균 연령이 40대에 불과한 젊은 교사들의 교육열은 광주일고 변화의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2009년 입시에서 서울대 3명, 연·고대 등 수도권 대학 20명, 의대 계열 9명, 교대 8명 등의 합격생을 배출한 것만 봐도 젊은 교사진의 힘을 실감할 수 있다.
광주일고 동문회도 매년 1억 2천만원의 장학금 기탁 등을 통해 후배들의 학업의식을 독려하고 있다.
< 광주일보 2009. 3. 18(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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