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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5월,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김태훈을 잊지말자(정철)
작성자장훈열 이메일[메일보내기] 작성일2005/04/29 13:03 조회수: 404

정철 (ibaji@hanmail.net) 
2001/5/18(금) 10:52

5월,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김태훈을 잊지 말자  

5·18 민중항쟁 21주년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김태훈 열사가 조국의 민주화를 열망하며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과 퇴진을 요구하며 목숨 바친 지 벌써 20주기입니다.

오월 민중항쟁을 '광주문제'로 축소하고 박제화하려는 수구세력의 음모 속에서도
우리 민중은 오월 민중항쟁을 통일운동으로, 민중생존권운동으로 힘차게 계승하고 있습니다.
21주년 기념행사는 어김없이 그러한 흐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면면한 흐름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불과 21년 밖에 안된 그날을, 그리고 희생하신 분들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오늘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본적인 민권과 자유가 그이들의 덕택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자랑스런 전통을 이어온 우리 동문들만은 최소한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21세기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민권, 통일을 선도할 오월 광주민중항쟁의 살아있는 역사와
수많은 민주열사들, 그리고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김태훈 열사를................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故 김태훈(金泰勳) 열사는  
1959년 4월 13일 광주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971년 광주서석초등학교 졸업 
1974년 광주 숭일중학교 졸업 
1977년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52회) 
1978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입학 
1979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진입 
1981년 5월 27일 서울대 경제학과 4년 재학 중 광주항쟁 추모 학내시위가 진행 중에 서울대학교 도서관 4층에서 광주항쟁 책임자 처벌과 퇴진을 요구하며,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투신 항거하여 그날 현장에서 숨을 거두어 용인 천주교 묘역에 묻혔습니다. 
1999년 2월5일 광주망월동 제5묘역에 이장, 안장되었고, 유가족은 보상금으로 1억5천만원을 받았으나 어머니 이신방 여사님은 전액 사회에 환원(전남대 화순 농어민병원 건립기금: 5천만원, 광주일고 장학금: 5천만원, 천주교회 및 518관련단체: 5천만원)하셨습니다. 

이신방 여사님은 1919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슬하에 5남4녀를 두셨습니다. 이여사님은 6·25전쟁 때의 피난살이, 남편의 실직, 광주민중항쟁 등 숱한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내가 걸어온 좁은 길'(샘물)을 펴내기도 하셨습니다.

아래는 관련 기사입니다.

“아들5·18보상금 1억5천만원 장학금등 내놔”   -1998. 10. 19. 동아일보-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로 인정돼 1억4천6백여만원의 보상금을 받은 유족이 전액을 장학금 등 공익기금으로 내놓았다. 81년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중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관악캠퍼스에서 투신자살한 김태훈(金泰勳·당시 22세)씨의 어머니가 화제의 주인공. 

김군의 어머니 이신방(李新芳·79·광주 동구 산수동)씨는 18일 “5·18보상금 가운데 5천만원은 아들의 모교인 광주일고 총동창회에, 5천만원은 전남대병원 화순농어민병원 건립기금으로 기탁했으며 나머지 4천6백여만원은 5·18유가족협회에 장학금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13일 5·18보상금을 받은 이씨는 이날 광주일고에서 열린 광주서중―일고 체육대회에서 문창수(文昌洙)총동창회장에게 “가정형편이 어려운 태훈이의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며 기금을 전달했다. 이씨는 “태훈이가 살아 있을 적에 ‘사랑을 사회에 실천하고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자’는 말을 해 그 뜻을 살리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씨의 다섯아들 중 김재곤(金在坤·58·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신곤(信坤·54·전남대병원장) 광곤(光坤·52·재미사업가) 태훈씨 등 네 형제가 모두 광주일고를 졸업했다. 


“자녀7명 서울대 보낸 이신방여사 자전적 에세이 펴내”  -1999. 4. 12. 동아일보-

평범한 공무원의 아내로 일곱 자녀를 서울대에 보낸 이신방(李新芳·80)여사. 그가 자전적 에세이 ‘내가 걸어온 좁은 길’(샘물)을 펴냈다. 팔순의 나이에 구수한 호남사투리로 써내려간 꼼꼼한 인생기록은 마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보는 듯 정겹게 다가온다. 

이여사는 스무살에 경찰관이었던 김용일(金容日·87년 작고)씨를 만나 결혼하고 큰아들 재곤(在坤·59·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씨부터 막내 요완(要完·36·한일병원 이비인후과 과장)씨까지 모두 5남4녀를 낳았다. 이중 7명이 서울대 법대 상대 공대 의대 가정대 사범대 등을 졸업, 현재 판사, 의사, 영양사, 교사, 재미사업가 등으로 일하고 있다. 

이여사는 아이들의 숱한 병치레, 6·25전쟁 때의 피란살이, 남편의 실직, 광주민주화 운동 등 숱한 삶의 고비를 책속에 담았다. 특히 81년에는 서울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여덟째 태훈(泰勳)이 민주화를 외치며 교내 도서관에서 투신해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이여사는 “특별한 태교나 육아법은 없고 사람 사는 당연한 도리를 가르쳤을 뿐”이라고 말한다. 고흥보통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 자녀들과 대화할 땐 항상 ‘…검토해봐라’ ‘…연구해봐라’며 결정은 스스로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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