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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91년 5월 어느 날, 화가 천경자는 큰 딸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을 등지고 떠나면서도 별다른 말을 남기지는 아니했다. 아마 그녀는 한국 기자들을 하이에나 보듯 무서워했을 것이다. ( 한국을 떠날 때도 미국에 도착할 때도 한국 기자가 공항에 나와 있었다) 당사자 작가가 태평양 너머 저 멀리 사라지자 흉흉한 소문들이 떠돌았다. 과천 미술관쪽 사람들은 그녀가 드디어 줄행랑을 쳤다고 수근 거렸다. ‘미국으로 출국’을 ‘미국으로 휴양’이라고 빈정거린 자도 있었다. 뒤쪽 그늘에서 모락모락 하던 ‘정신 착란설’이 활활 타올랐다. 얼마 전에 일어난 <인도의 무희> 위작 논란도 천경자가 다시 살짝 번복 했다는 것. 평소 의심이 많고 잡아떼는 게 천경자의 고질적 습성이요 천성이라는 것. ‘미인도’ 경우도 천경자 본인이 미국으로 도망을 가기 전에 진품 시인을 하였다는 것. 이후, 미림(美林) 고수 이정성 관장에 동조하는 미림홍파들에게 ‘천경자 치매설’이 정설로 굳어졌다. 정파(正派)를 자부하는 미림홍파 그룹에게는 너무 명확해진 사실이기에 그 ‘미인도’ 실물을 굳이 살펴 볼 필요가 없었다. ‘미인도는 진품이요, 이를 부정한 천경자는 후안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규정되었다. 美林 江湖의 질서를 흐리게 한 사파(邪派)라는 것. 돌이켜보면, 과학적 감정이 있긴 있었다. ‘미인도’ 사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감정결과회신을 해주었다. ‘필적감정곤란에 따른 감정불능’, ‘안료부족에 따른 감정불능’으로 회신하였던 것. 그렇게 국립현대미술관에 회보한 시점은 이정성 미술관장의 공식적인 기자회견 직전이었다. 그런 감정불능회신 결과를 일반대중들에게 널리 크게 보도해준 언론매체도 없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그 사정이 전도되고 말았다. 오히려 과학수사연구소, 과학기술연구소가 과학적으로 ‘진품’ 확정을 했다고 알려졌다. 심지어는 법원 판결로도 ‘진품’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기재한 책마저 등장하였다. (지금도 천경자를 상대로 그런 내용으로 인신공격을 감행하는 책과 글들이 있다.) |